지리선생님 김재창의 팔도유람 산 이야기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도성 안에 깃든 역사와 문화, 생태 트레킹
한양도성이 처음 완공된 것은 약 625년 전이다.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낙타(낙산)·목멱(남산)·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숙정문·흥인지문·숭례문·돈의문이며 4소문은 창의문·혜화문·광희문·소의문이다. 안타깝게도 흥인지문·숭례문 구간은 성곽이 멸실되었고, 돈의문과 소의문도 없어졌다.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오간수문(五間水門)과 이간수문(二間水門)을 두었다. 한양도성은 전체 구간의 약 70%, 13.7km(2023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었다. 숙정문·광희문·혜화문을 중건하였지만 광희문과 혜화문은 부득이하게 원래 자리가 아닌 곳에 세워지게 되었다.
한양도성 성곽 둘레를 걸으면 그 안에 깃든 역사와 문화, 생태를 느낄 수 있는 도심 속 트레킹코스다. 이번 여정의 인왕산 코스는 창의문~윤동주 시인의 언덕~인왕산 정상~인왕산곡성~홍난파가옥~경교장~돈의문터. 거리는 약 4.0km, 소요시간은 3시간이다.
전철을 타고 경복궁역에 내려 버스(7022) 대신 창의문까지 멀지만 걸어갔다. 통의동 백송 터를 둘러보고 약 30분을 걸어 들머리에 도착하였다. 1.21사태 때 순직한 두 경찰관 동상이 서 있었다. 한쪽에는 청계천 발원지라는 작은 비석이 있었다. 조금 올라서니 성곽이 보이고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창의문이 우뚝 서 있었다.
창의문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실이 익어가고 있었다. 바닥에는 매실이 떨어져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곧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타났다. 윤동주 시인이 학교 다닐 때 이 부근에서 하숙을 했고 <서시>,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 같은 대표작을 썼다고 한다.
성곽을 따라 인왕산(338m) 정상으로 향했다. 오르다 성벽에 글자가 새겨진 돌을 발견하였다. 도성 축성과정을 알 수 있는 각자성석(刻字城石)이다.
중턱쯤 다다르니 조망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 빼곡히 들어선 건축물, 녹음이 우거진 산, 파아란 하늘이 어우러진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다. 청와대, 경복궁은 마치 성냥갑처럼 작게 보였다. 맞은편 북악산의 기다란 성곽이 보였다. 두 소나무가 붙은 연리지(連理枝)도 눈에 띄었다.
어느덧 정상에 올랐다. 사방으로 막힘없이 펼쳐진 드넓은 조망이 가슴속까지 후련하게 하였다. 서울 4대문 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낙산(駱山, 125m)은 너무 낮아 어디인지 헷갈렸다. 외사산(外四山)은 북한산, 덕양산, 관악산, 용마산이다. 행주산성이 자리한 덕양산만 안산에 막혀 볼 수 없었다.
성곽을 따라 하산하였다. 멀리 두 개의 우뚝 솟은 바위가 보였는데 소원을 빌면 모두 이루어진다는 선(禪)바위이다. 바위에 커다란 구멍이 여러 개 있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홍난파 가옥, 경교장을 지나면서 성곽이 끊겼다. 홍난파 가옥은 고향의 봄을 작곡한 홍난파 선생이 6년간 지내면서 말년을 보낸 집이다. 경교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숙소이자 환국 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다. 그런데 경교장이 강북성심병원에 가려 초라하게 버티고 있어 안타까웠다. 큰 도로가 나오자 돈의문 터가 나타났다. 도성의 서대문이 있던 자리인데 1915년 도로 확장을 위해 철거하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곽 멸실 구간을 걸었다.
산이야기 김재창 ☎010-2070-8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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