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선생님 김재창의 팔도유람 산 이야기
수도 서울의 국립공원 북한산
문수봉에서 사방 펼쳐진 광대한 도시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접근성이 좋은 북한산을 찾았다. 북한산(北漢山, 835.6m)은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에 있다. 이름은 조선 후기 시대 때 한성의 북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이 산을 바라보면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삼각으로 나란히 우뚝 솟아 있어 삼각산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졌고 수십 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다.
북한산은 등산코스가 여러 개가 있다. 이번 산행은 평창동에서 오르기로 계획하였다. 등산코스는 평창공원지킴터-동령폭포-대성문-대남문-문수봉-승가봉-사모바위-승가사-구기계곡, 거리는 약 12km, 소요시간은 6시간이다.
북한산 등산로를 잘 아는 동료와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들머리로 갔다. 주변은 고급주택이 즐비하였고 한적하면서 고요하였다. 북한산이 워낙 넓어서 그런지 등산하는 사람이 안 보였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올랐다. 어느새 낙엽이 많이 져서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조금 올라가니 북한산의 으뜸 폭포라는 동령폭포가 나타났다. 그러나 수량이 부족해 폭포의 위용을 느끼지 못하였다. 폭포 건너는 형제봉이 우뚝 솟아 있었다. 더 오르니 일선사 사찰이 나타났고 능선에 위치한 대성문까지는 0.7km를 더 가야 했다.
나무들은 단풍 대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어 쓸쓸하게 보였다. 멋진 단풍을 보려는 생각은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단풍을 볼 수 있는 기간이 무척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대성문(大城門, 약626m)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대성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성문이다. 당시 정궁인 창덕궁에서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통로였다. 북한산성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 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산성을 따라 300m를 가니 대남문이 나왔다. 주변은 터가 넓어 휴식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커다란 개 3마리가 등산인들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먹이를 얻어먹고 있었다. 야생개라 두려움을 느꼈다.
대남문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고 문수봉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문수봉(727m)에 올라서니 사방이 확 트여 조망이 광대하고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처음 마주하는 풍경에 감탄사만 연발하였다. 마치 설악산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수봉에서 승가봉 방향으로 가다가 깎아지른 듯한 바위 암벽을 내려갔다. 쇠줄이 설치되어 있지만 다리가 후들거렸고 공포심이 들었다. 다 내려와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거대한 암반에 통천문(通天門)이라 불리는 좁은 석문을 지나갔다. 승가봉(567m)에 오르니 비봉(556m) 정상부에 있는 진흥왕순수비가 작게 보였다. 모형이 세워져 있고 실제는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1km를 더 가니 멋있는 사모바위가 나타났다. 바위의 모습이 조선시대 관리들이 머리에 쓰던 사모(紗帽)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1968년 1·21사태 당시 김신조 일행이 바위 아래 숨어 있었다고 해서 김신조 바위라고도 불린다. 바위 밑 은신 장소를 보니 숨어 있기에 최적의 장소 같았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는 무장공비 밀랍인형이 설치되어 있어 섬뜩함이 느껴졌다.
하산 도중 가파른 지형에 자리잡고 있는 승가사(僧伽寺)에 들렀다.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승가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입구에는 화려한 9층 석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건물들은 계단식으로 지어져 있어 독특하게 보였다. 이 절에는 보물 2점이 있는데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과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이다. 인상적인 보물을 확인하고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산이야기 김재창 ☎010-2070-8405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