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시 하나 6
같은 것끼리
김길애(노원문인협회 고문)
덩어리 돼지고기를
썰다 말고
숫돌 대신 다른 칼을 덧대
무뎌진 칼날을 간다
칼등과 칼날
부딪힐 때마다
다듬어 내는 아찔한 정신
손심줄 힘 누르지 않아도
고기가 쓱쓱 썰어진다
무쇠는 무쇠를 만나고서야
몸과 마음 추스르던, 붉고
싯푸렇던 시간 떠올리는 것이다.
-제3시집 馬頭琴(마두금)
무딘 칼은 날카로운 칼보다 위험하다. 칼 가는 방법에 다른 칼등에 무딘 칼날을 대고 가는 법이 있음을 배운다. 다행히 칼날과 칼날이 부딪치는 건 아니라 시인은 그 과정을 무쇠끼리 만나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고 표현했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의 첫 구절이다. 현재적 해석으로 ‘아’는 내 안의 나, ‘비아’는 내 안의 타인을 이르기도 한다. 투쟁을 통해 나의 자존과 이성을 일깨우는 존재는 나 자신, 내 안에 다른 나, 혹은 타인일 수도 있고, 시 한 편일 수도 있다.
시인이 잘 벼린 시어로 조각한 시편들을 읽노라면, 하늘에서 ‘같은 것끼리’ 내는 섬광에 감전된 듯 오래 정지해 있게 된다.
노원신문 김명화 기자 mhyb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