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냐, 정의냐?”
정정렬 편집위원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영화 〈비키퍼(The Beekeeper)〉는 비밀 암살자 출신 주인공이 소중한 이웃 여인을 국제 사기조직의 공작으로 잃은 뒤 직접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사기 집단의 최고 우두머리가 결국 국가 권력의 최상층부임이 밝혀지는 대목에서, 전직 암살자 아담 클레이(제이슨 스타뎀)는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현직 FBI 요원이자 죽은 여인의 딸인 베로나(에미 레이버-램프만)에게 묻는다.
“법이냐, 정의냐?”¹
법이 이미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버린 상황에서 베로나는 결국 그를 향한 총을 거둔다.
12·3 내란 사태를 겪으며, 권력이 법을 유린할 때 얼마나 심각한 비극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미래의 권력에 줄을 대고자 자신을 담보로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들의 언행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과거 이라크 쿠르디스탄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현지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려 했던 경험이다.
당시 대한민국 1종 운전면허를 바탕으로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갔으나, 운전면허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그곳에서는 효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나는 현지 당국에 이렇게 물었다.
“나는 외국인입니다. 그래서 귀국의 법을 따르고자 하는데, 차를 사는 것은 괜찮다면서 자가운전은 안 된다고 하니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업차 머무는 곳이라 차량은 현지에서 구입했고, 운전기사도 있었지만 때때로 직접 운전해야 할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러나 현지 제도상 나는 엄연한 무면허 상태였다. 해결책을 찾던 중, 교통경찰청을 관할하는 내무부에 지인이 있어 장관실 명의의 〈외국인 운전면허 특별발급 허가서〉를 발급받아 면허 관할 기관인 교통경찰청을 찾았다. 교통경찰청장은 반갑게 포옹하며 나를 맞아주었다. 예전에 다른 계기로 인연을 맺었던 사이였다. 장관실 공문을 확인한 그는 “전혀 문제없다.”며 반기면서도, 절차상 아래 창구에서 접수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창구의 실무자는 과거 코이카(KOICA) 한국 연수를 다녀왔다며 어눌한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정작 장관실 공문을 유심히 검토하더니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방금 전 자신의 최고 상급자가 승인한 서류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실무자는 관련 절차를 잘 알고 있으며, 아무리 상부의 지시가 있다 한들 법을 위반하여 면허를 발급할 수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한국 연수에서 배운 원칙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되물었다. 장관실 공문도 있고, 청장의 승인도 있는데, 발급할 수 없는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돌아온 답은 명쾌했다. “법이 그렇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청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고, 실무자와 함께 청장실로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청장실에서 실무자가 면허 발급이 불가능한 법적 이유를 재차 설명하자, 청장은 이렇게 지시했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서류 절차를 밟아서 서명해 올리게.”
그리하여 현지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지만, 해당 처리 서류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법적 요건에는 부합하지 않으나, 청장의 지시에 의거하여 절차를 진행함.’
상사의 눈치만 보며 영혼 없이 지시를 따른 것이 아니었다. 원칙을 지키는 위치에서 정당하게 이견을 제기하고, 상급자가 정무적 판단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사실을 문서로 명확히 남긴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해당 사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되었는지 기록하여 훗날의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지였다.
지시였는지 강압이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무면허 상태를 벗어났다. 훗날 내무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 에피소드를 전하자 그는 이렇게 답하며 웃었다.
“우리 젊은 친구들이 똑똑합니다. 한국에서 좋은 교육을 시켜준 덕분이지요.”
우리나라는 원래 그런 나라였다. 정의와 원칙의 가치를 가르치고 수출하던 나라. 그러나 정작 지금 이 땅에서는 그 소중한 원칙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영화 속의 한마디 대사가 다시금 귓가를 맴돈다.
“법이냐, 정의냐?”
오도된 법을 강제하는 권력의 폭주가 그치기를 바란다. 정의보다 권력의 눈치 보기가 앞서는 혼돈의 사회 속에서, 굳이 법과 정의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아야 한다면 당당히 정의를 따르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정권과 권력자가 바뀌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멍든 가슴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덜 아프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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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권력에 의해 오염된 '법'인가, 아니면 곧은 '정의'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글쓴이 / 정정렬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