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토박이 정정렬의 초보 노원살이
이라크 북부 쿠르드에서 13년 ‘민간자이툰’ 활동
가족과 함께 이웃 이야기하는 즐거움
“상계동에 사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같은 말, 같은 느낌을 느끼는 동료가 있다는 것, 저녁에 소주 한잔 마시면서 사는 이야기 하는 것도 즐겁다. 가족들과 집 앞의 찐빵장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사는 맛이다.”
상계역 앞 벽산아파트에 사는 정정렬씨는 누구보다도 노원을 사랑하는 주민이다.
월계동에 살면서 신창초등학교를 나왔고, 서라벌중학교를 다녔다. 결혼하고 잠깐 시내에 나갔다가 다시 노원에 들어와 살았다. 노원을 고향이라고 하는 그는 노원에 사는 것이 새삼 설렌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에서 13년을 일하다 올해 귀국한 것이다.
2003년 미군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한다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에 전쟁을 피해 시리아로, 터키로, 유럽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쿠르드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난민지역이 설정되었다. 이곳은 미군을 도와 후세인과 싸운 쿠르드족 자치정부도 세워졌다. 이라크평화재건대 자이툰 부대도 그때 파견되었다. 미국 국무성의 지역개발단 숙소를 건설하는 일을 했던 매형의 호출로 이라크로 향했던 것이 2005년이었다.
영어를 좀 해서 현장통역으로 갔다가 현지인들을 만나면서 쿠르드어를 배웠다. 무역업 - 이라크 정부입찰을 통해 한국제품을 공급하는 무역업도 하고, 현지에 진출하는 포스코건설 등 한국기업의 지역전문가로 일하면서 자문 및 현지민원을 해결했다.
“쿠르드에서는 저를 보고 반갑다고 ‘니 하오’‘하이 재키찬’ 이라고 했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한-쿠르드친선협회를 만들고 협회장으로서 한글학교도 운영했다. 65개 학교와 정부기관에 한국관련 도서 및 영상자료를 제공하며 ‘민간 자이툰’을 자임했다.
정정렬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키 운동화를 만드는 화승 광고홍보팀, 사보팀에서 일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NBA에 진출한 하승진 선수의 스포츠마케팅 매니지먼트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긍정의 마인드’를 제공하는 스포츠지도자 이미지를 캐릭터로 만들고 캠페인도 기획했다. 당시 에이전시 개념이 없던 때라 10년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정치광고를 했다. 손학규 의원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의 선거기획에도 참여했다.
“유권자의 요구와 출마자의 의지를 결합하여 선거구호도 만들고 캠페인도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달라진다. 당선되면 당 조직 안에서 제한되어 행동할 수밖에 없다.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닌데 당 때문에 못하는 일이 많다. 유권자가 그 말과 행동을 계속할 수 있게 지켜봐야 민주주의가 된다. 유권자에게 도와달라고 했으니 유권자와 꿈을 같이 이뤄야지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이다. 노원에도 좋은 의원들 많은데, 처음 가진 그 생각을 가지고 쭉 그렇게 해 나가길 바란다.”
13년의 험지 생활에 잠시 가족과 함께 쉬려고 마침 업무가 끝난 틈에 귀국했다. 그 사이 두 딸은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부담도 덜었다. 국내에서 할 만한 일이 있을까? 언제까지 놀 수 있을까?
쉬는 기간 동안 못했던 것, 내 고장 내 말에 대해 알고 싶어 50+센터를 찾았다. 공릉청소년센터 이승훈 센터장의 마을이야기가 감명 깊었다. “수락산, 불암산이 우리 동네 뒷산인데 아는 게 없다. 친구들에게 우리 동네 자랑도 하고 싶어서 마을해설가 과정, 숲해설가 과정을 공부했다.”
앞으로 차근차근 우리 동네에서 새삼 느끼는 이야기를 노원신문을 통해 이웃과 나눌 계획이다.
노원신문 백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