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록 시니어의 마을일기
중계복지관 POP반 이야기(260727)
예쁜 간판이나 한눈에 쏙 들어오는 차림표를 볼 때도 그저 한번 보고 지나쳤습니다. 그것이 POP(Point of Purchase)라는 것도, 내가 직접 POP를 하게 될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중계복지관 POP반에서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무엇보다 쉽고 무난합니다. 사각펜촉의 결을 따라 나오는 글자들이 서투른 중장비의 바퀴자국처럼 묵직합니다. 어떤 분들은 조금 다른 경로로 나아갑니다. 까막눈 학생마냥 겸손하다가도 점점 나아지는 것을 보고 우리는 박수칩니다. 조선희 선생님의 칭찬에는 용기백배, 진심입니다.
잔잔한 음향이 교실 안에 흐르면 나는 수행자처럼 낮아집니다. 단정하게 묻어 나오는 글자들에 정성을 다합니다. 「문해학교」를 다니시는 어머니께 또박또박했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내가 도화지랑 이만큼 진실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종이는 한 장 샀으나 「왕자파스」는 가정 형편상 언감생심이었던 유년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POP의 감사함은 거기에도 있습니다. 이면지나 과자의 포장지, 그리고 해가 바뀌도록 걸어본 적도 없이 분리수거하는 달력들이 아주 좋은 도화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멋진 풍경이나 성화나 불화가 인쇄된 달력은 밑그림이 아름다운 캔버스가 됩니다. 명화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 어울리는 POP를 쓰면 새로운 ‘나의 것’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투박한 골판지도 질감이 뛰어난 재료가 됩니다. 크레파스도 크레용도 색연필도 이제는 많습니다. 이중섭은 너무나 궁핍해서 담배 은박지 뒤에 그 유명한 「흰소」를 그렸다고 합니다. POP는 고급스러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버려지는 것들에게 재차 생명을 줍니다.
오늘은 각자의 작품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먼저 파스텔로 부드럽게 매만지고 픽사티브(FIXATIVE)를 살짝 뿌려주어 밑그림이 흩어지지 않도록 진정시킵니다. 다 마르면 가는 색연필로 점점이 꽃밭을 그립니다. 해가 뜨고 무지개도 떴습니다. 거기에 POP로 글자를 넣습니다. 대장경을 판각하는 장인처럼 나는 진지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마침내 세상에 없던 나의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집에 걸어놓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의 칭찬이 과하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급우님들의 박수에는 또 속절없이 흐뭇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의 작품에는 더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몇 년씩 복지관에서 공부하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POP는 응용과 활용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기가 작아도 솜씨가 달라도 다 예쁩니다. 그만큼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라는 뜻이겠지요? 모두가 달라도 모두모두 좋습니다. 또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실용적이고 실질적입니다. 한글을 갓 뗀 아이처럼 신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작품들에 박수쳐 드렸습니다.
저는 화가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림은 내가 범접할 수도 없는 ‘넘사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POP를 배우면서 이제야 그림에 대한 감각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손에 닿는 감촉의 끄트머리를 느껴본 것만으로도 충만합니다. 크레용과 크레파스와 도화지가 부러웠던 그 옛날 미술시간의 간절함이 떠오릅니다.
어느새 방학이 되었습니다. 복지관도 학교와 같습니다. 우리는 방학 중에도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하굣길(?)에 삿갓봉 공원에서 동네 형님들께 작품을 보여드리고 같이 웃었습니다. “잘 했네! 여기 걸어놓으면 되겠네~에!?” 아내도 빙그레 웃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오랫동안 넘사벽이던 것을 직접 해보니까 손에 닿는 것들이 있고 눈이 밝아져서 문리(文理)가 터집니다. POP는 나를 성찰하면서 그림으로 들어가는 차근하고 요긴한 통로입니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