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록 시니어의 마을일기
북서울 꿈의숲 소풍과 화덕 생선구이 ‘고해성사’
70년대에는 ‘공주능’이라고 했는데, 중국집(대동장)을 하신 고숙을 따라서 새벽부터 ‘철가방’의 영역을 확인하러 다니던 장위동의 야산은 한동안 ‘드림랜드’로 개발되었다가 지금은 멋진 「북서울 꿈의숲」이 되었습니다.
수유에 살던 딸이 지난해 그 동네로 이사해. 간혹 일요일 아침 일찍 「북서울 꿈의숲」을 걷고 딸집에서 놀다 오는 것은 아내와 나의 작은 소풍입니다. 차로 20분 거리입니다. 시원한 아침. 벌써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맨발로 8000보를 걸었습니다. 딸에게 전화하고 마트에서 손자들에게 약속한 ‘수박바’와 아이스크림을 샀습니다.
훌쩍 큰 손자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달려듭니다. 사위도 인사를 했습니다. 손자들이 ‘수박바’를 뜯었는데 ‘거꾸로 수박바’는 속이 파랗고 껍질이 빨갛게 된 것입니다. 손자들은 왜 “거꾸로”냐고 물어봅니다. 손자들은 한글을 곧 깨우칠 기세입니다.
딸이 점심을 먹자고 했습니다. 아내가 수유리 화덕구이집을 얘기했습니다. ‘별빛에 말린 시래기-화덕에 구운 화덕 생선구이’는 명단을 적고 한참을 기다립니다. 노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들이 많았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께는 소화가 잘되는 생선이 그만입니다. 아내가 장대와 볼락, 임연수와 고등어구이와 손자들의 돌솥밥을 하나 더 주문했습니다. 직원이 6인석이라며 주문을 추가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전에 없던 ‘버릇’입니다. 사위가 시래기 해물파전을 더 시켰습니다.
물김치와 깍두기, 숙주나물과 시래기국이 나왔습니다. 한참 뜸을 들여서 돌솥밥이 나오고 곧 화덕구이 생선을 대령했습니다. 이 집의 생선은 기름기가 없이 맛깔납니다. 불간은 어찌하는지 빠삭한 껍데기를 벗기면 하나도 타지 않은 생선의 속살들이 툭툭 불거져 나옵니다. 요리가 마술입니다. 껍질은 바싹 탔는데 뜨겁지 않아서 손자들도 생선살을 아주 잘 먹습니다.
오늘은 접시보다 큰 ‘장대’가 압권입니다. 살을 발라내는 일이 거대한 화석을 발굴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했습니다. ‘발골’을 하는 사위도 이런 장대는 처음 본다면서 땀을 흘렸습니다. 손자들을 먹이고 딸까지 달려들었지만 장대는 좀체 줄어들지 않습니다. 나는 악어처럼 휘어진 장대의 잔해를 갈비처럼 알뜰하게 다 발랐습니다. 뼈가 시조새의 화석처럼 가지런해졌습니다. 껍질도 몇 조각으로 나눠서 잘근잘근 씹어보았습니다. 장어의 껍질처럼 쫄깃쫄깃합니다. 육류의 지방과는 다른 맑은 생선기름이 한가득 고입니다. ‘대가리’도 남았습니다. 검게 탄 장대의 머리가 커다란 ‘슈발’의 부리처럼 뭉툭합니다. 어른 손바닥만 한 것을 찢어서 적지 않은 살을 샅샅이 발라냈습니다. ‘눈깔’을 파먹는 것은 화룡점정의 묘미입니다. 넓고 깊은 장대의 눈자위에는 부드러운 살결도 많이 붙어있습니다. 놀라운 음식 앞에서 나는 사위에게마저 염치와 체면을 내려놓았습니다. 성호경을 긋고 나에게 와 준 장대에게 감사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내가 결제했습니다. 아내 덕분에 몸보신을 제대로 한 셈입니다. 아내는 「까미노」에서 빵도 샀습니다.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다.” 손자들도 대만족입니다.
딸네 집에 와서 딸에게 온라인으로 쌀을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딸에게 이체하고, 내가 아내에게 갚습니다. 언제부턴지 쌀은 내가 사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연거푸 전화가 3통이나 왔습니다. 마음이 들떠서 아내를 추동하여 일어났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손자들이 문 앞에 나와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딸 동네에서 소풍하고 점심까지 잘 먹고 오는 날은 정말 좋습니다. 손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합니다. 나도 대만족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나한테 10만원 더 찾아줘.” 차에 타자마자 멀쩡하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내를 모르지는 않지만 “오늘 점심은 당신이 산 것 아냐?”라고 해보았습니다. 아내는 두 번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쌀값만 내밀었습니다. 공기가 험해졌습니다. 여지가 없습니다. 공손하게 돈을 다 드렸습니다. 아내는 두말없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저녁을 생략하게 됩니다. 한참 사진을 정리하다가 곤히 자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이 “나는 얼마나 작으냐.” “모래야, 바람아, 먼지야, 나는 얼마나 작으냐!” 생선구이 점원의 ‘버릇’에는 옹졸하게 ‘꽁’하고 아내에게는 돈 때문에 개겨도 보고. 아, 나는 얼마나 작으냐! 나는 김수영보다 작게 고해성사를 합니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