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6-24 12:36

  • 연재물 > 어르신

깊어가는 어머니의 강 - 윤영록 시니어의 동네일기

기사입력 2026-04-01 16:47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0

윤영록 시니어의 동네일기

깊어가는 어머니의 강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만 드리는 것으로는 어머니께 죄책감이 큽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의 목소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신답니다. 쑤시고 결리고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하시던 어머니는 오늘 내려간다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금세 목소리가 쾌청해지셨습니다. 아내의 말마따나 미리 말씀드리면 하루 종일 기다리시니까 도착해서 전화를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한 것입니다. 화순에서 버스를 내려 축협마트에서 장을 봐 택시를 탔습니다.

전화만 하다가 오늘처럼 한 걸음 하는 것이 여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파를 다듬다가 나를 보자마자 지팡이를 짚고 나오셨습니다. “()가 온다고 해서 밥해놓고 파김치 담가 줄려고 다듬고 있다!” 오랜만에 뵙는 어머니의 환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서둘러 반찬을 꺼내 어머니랑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하느님, 어쨌든지 간에 내 몸 아픈 데 다 낫게 해 주시고, 우리 자식들 잘 살펴 주세요. 아멘!” 어머니는 밥을 한 공기 다 드시고 겁을 내시던 매운 반찬도 잘 드셨습니다. 나는 냉장고를 살펴봅니다. 얼마 전에도 다녀간 동생들의 손길이 찬찬합니다. 동생들이 효자입니다. 요양보호사도 여동생들이 들였습니다. 약을 드시고 어머니랑 운동을 나갔습니다. 오목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아프다는 전화를 자주 하셨는데 오늘은 씩씩하십니다.

저녁에는 파김치를 담고 꼬막장도 담갔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은 여전하십니다. 저녁을 잘 드시고 조금 걷다가 6시 내 고향을 보았습니다. 용돈을 보내준 며느리에게는 고맙다고 통화를 하셨습니다. “돈이 그만치나 있으면 됐제? 뭔 전쟁을 헌다고 저 난리냐? 트럼프는.” 뉴스가 나오자 어머니는 까무룩 졸았습니다. TV를 끄고 이내 코를 고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습니다. 야윈 손마디가 차갑습니다. 손을 주물러 드리고 어깨와 팔다리도 주물러 드렸습니다.

워너니 낫네~!” 어머니의 숨소리가 훨씬 가벼워집니다. 다시 어머니의 손을 내 두 손으로 감싸 쥐었습니다. 어머니의 숨결을 타고 지난 일들이 별처럼 전해옵니다. 중학교 때부터 자취한다고 나가 살았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랑 산 날이 많지 않습니다. 순박하기만 하던 어머니는 그런 나를 뒷바라지하시느라 한평생 장군처럼 사셨습니다.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이 시간만 되면 오금이 저리고, 쑤시고, 아프단 말이다! 병원에 가도 그때 뿐이제, 소용이 없어야.시골 닭은 사람들을 너무 일찍 깨웁니다. 어머니의 다리를 펴 드리고 머리도 두드려 드리고 얼굴도 쓰다듬어 드리고 발끝치기도 같이 해 드렸습니다. “음마? 채 더 낫다야? 다리도 풀리고 허리도 펴지고 머리까지 시원해지네!?”

'남촌공 총회'날입니다. 어머니는 60년 전에 시제를 모신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도 그때가 생각납니다. 그 시절을 같이 살아내신 몇몇 분들도 나오셨습니다. 나는 60년 전 이곳에서 어머니가 시제를 모셨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두 박수를 쳐 주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화순장에 들렀습니다. 어머니가 담가주신 파김치와 참기름은 아껴서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는 한없이 나를 안아주시고 집안의 밑거름이 되어주신 깊어가는 강입니다. 어머니가 오늘만 같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노원신문

 

 

116 (100-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