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시 하나28
빈 집
배덕정 노원문인협회 명예회장
고향집 녹슨 철대문 열고
-엄마 딸래미 왔어요
큰소리로 불러본다
토방 기둥못에 걸려 있는
엄마표 꽃무늬 몸빼바지 명지바람 일으키며
-오매 내 강아지 짜잔한 엄마 보러 왔는가
달려나와 와락 반겨 주는 것같다
시절을 함께 건너온 빛바랜 가재도구들
엄마와 함께 모조리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구멍 숭숭 뚫린 휑한 집
늙수그레한 골동품 몇 점
조붓한 사랑방에서 흑백 무성 영화를 찍고 있다
엄마 닮은 중늙은이들
가끔 찾아드는 몇몇 걸음이
흑백 무성 영화 관람객일 뿐
골다공증을 앓는 빈집은
여전히 끙끙 앓느라 씨름 중이다
-시집 『수락골의 달』
시골에 빈집이 늘고 있다고 한다. 유품 정리를 해도 고인의 흔적과 채취가 곳곳에 짙게 배어있는 집, 돌보지 않으면 몇 달 사이에 거미와 곰팡이가 새롭고 오래된 수묵화를 그려놓는 집.
사람이 집에 살지만 집을 살리는 건 사람인 모양으로,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집은 쉬 낡고 스러진다. 시인은 그걸 ‘골다공증을 앓는 빈집’이라 표현했다. 뼈 숭숭한 어머니와 낡아가는 집을 동일시한 참신하고 기발한 표현이다. 이 구절 하나로 이 시는 완성됐다.
이에 더하여, 찾아온 딸을 반기는 엄마의 마음을 ‘엄마표 꽃무늬 몸빼바지 명지바람 일으키며’로 비유했다. 합성섬유인 몸빼바지가 자연섬유인 명지(명주明紬, 실크)같이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을 일으킨다니, 어머니의 사랑은 본연적이고 지고지순하다는 것을 한 줄로 인자해놓은 것이다.
사랑방 색채는 흑백이라 적었다. 시대를 관통한 골동품들이 손편지, 만년필, 진공관 앰프보다 더 오래된 것이기에 많이 바래기도 했겠지만, 흐린 기억 속 그날들이 총천연색인 현재로 돌아올 수 없다는 안타까운 인식이 머무는 시행이다. 주인 잃은 집이 끙끙 앓는 소리가 공간을 넘어 들려온다.
노원신문 김명화 기자 mhyb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