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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의 미래를 위한 도시재구조화

도시는 시민의 삶을 규정한다

기사입력 2025-11-0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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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도시는 시민의 삶을 규정한다

노원의 미래를 위한 도시재구조화

1995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보면 올해로 지방자치 30년을 맞았다. 내년 6월이면 민선 9기가 탄생한다. 새로운 주자들이 나와서 노원주민, 서울시민의 요구와 희망에 호소하고 있다.

지금 노원은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도시가 조성된 지 40년이 되어가면서 또 한 번의 상전벽해를 준비하는 단계이다. 노원의 미래를 밝혀줄 구상과 계획이 탄탄한 뚝심으로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는 노원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노원은 대한민국 1핵 도시인 수도 서울의 최북단 외곽 지역이다. 개발시대 이전까지는 그저 한가한 농촌사회였다. 중랑천을 끼고 마들농요가 남아있고, 불암산 먹골배가 아직도 유명하다. 그러다 1911년 경원선, 1930년대 경춘선이 개통되고 1939년 연촌역(성북역, 광운대역)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그 일대에 역세권이 형성되었다. 해방되면서 그 인근으로 대학들도 이사왔다.

전쟁 후 본격적인 개발시대에 들어가는 1963, 노원은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도심부 재개발 사업에서 밀려난 철거민, 이재민이 대규모로 이전해 산등성이 달동네, 강둑에 꼬방동네를 형성했다. 1980년대 주택 200만호 공급정책에 따라 상계동의 농지를 택지로 개발하고, 새로 지은 주공아파트에 주민들이 입주하면서 마침내 1988년 노원구가 탄생했고, 아파트 주거양식이 월계·공릉동까지 퍼지면서 노원은 베드타운이 되었다.

노원구와 함께 1989년 창간한 노원신문은 이렇게 주거가 바뀌고, 지역사회가 달라지고, 도시 성격이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해왔다. 노원신문이 지켜본 노원은 서울 변두리 베드타운이지만 도시 서민의 가장 안락한 주거지였다. 주민들은 일상의 행복과 성취를 이웃과 나누었다. 그래서 지역신문이라는 연약한 언론도 주민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의 국회의장, 두 번째의 환경부장관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노원의 성숙한 시민의식의 성장을 보여주는 성과라 할 수 있다.

도시는 시민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큰 테두리이다. 지금까지의 개발사업은 정책적인 측면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 저항과정에서 상계동올림픽우리나라 최초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종합복지관, 자활사업 같은 도시빈민 운동을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주민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이미 구조화된 도시 안에 사는 소시민으로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노원이 주거밖에 없는 지금의 모습이 된 것도 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 연유이다.

그런데 이제 노원은 새로운 변화, 도시의 재구조화 시기를 맞이했다. 결국 도시정비를 통해 노원은 새 모습을 갖출 것이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많은 이해관계인이 관여하는, 그래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사업이다. 정비업자에게는 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 정치인에게는 유권자로 대상화되지만 도시소비자인 시민의 이해와 요구, 참여를 어떻게 조율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4년 단위로 바뀌는 정책이 아니라 100년 내다보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술자리에서 부동산을 이야기하듯 도시계획을 토론해야 한다.

노원의 애환을 담아 온 노원신문은 앞으로도 노원의 희망을 이야기할 것이다. 희망이 현실이 되도록 분투할 것이다. 노원신문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큰 격려와 응원을 바란다.

99 (100-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