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신문 1095호 사설
노래하는 무당이 귀신을 잡는다
김구 선생의 소원 ‘문화의 힘’
“팅갈 민따 마앞 트루스 등으린 락얏 아파 수샇냐”
최근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정부의 온라인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어 발음을 소리나는 대로 한글로 옮겨 적어 공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말의 뜻은 “그냥 사과하고 국민들 말 좀 들으면 될 텐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냐?”는 것이다. 한류 영향으로 상당수 젊은 층이 한글에 익숙한 덕분에 이런 방식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시위 영상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주제곡 테이크 다운(take down, 끌어내려)을 삽입해 분노를 대변한다고 한다.
1980년대 시위 때마다 불렀던 민중가요 ‘오월가’는 프랑스 샹송가수 미셀 폴나레프(Michel Polnareff)가 1971년 발표한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Qui A Tue Grand'Maman)’의 번안곡이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나오는 「나의 소원」의 한 대목이다.
파아란 하늘이 열리고,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요즘 여기저기서 잔치가 열린다. 한해 결실을 풍성하게 만들어 곳간을 채워줄 자연에 감사하고, 그 결실을 위해 수고한 우리 스스로를 달래주는 놀이판이다. 이때 사람들은 각자의 장기를 풀어내며 손뼉 치고 환호한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겼던 우리 문화의 흥이 문화의 달을 채운다.
바로 이때 김구 선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듯 한국문화의 자긍심을 한껏 올리고 있다. 소니가 제작해 6월 20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때문이다.
케이팝 아이돌과 무속 신앙이라는 한국적인 요소를 담은 이 영화는 넷플릭스 28년 사상 최초로‘3억뷰’를 기록했고, 주제곡 ‘골든(Golden)’은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달렸다. 최고 권위 음악상인 그래미상과 영화상인 오스카상의 유력 후보로 꼽고 있다. 세계인이 ‘골든’을 따라 부르거나 ‘소다팝’에 맞춰 춤추고, 케데헌 속 한국 전통문화와 음식을 맛보러 서울로 몰려온다. 국뽕(자국에 대한 환상에 도취되어 찬양)에 취할만하다. 영화 속 한국문화에 매료돼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는 쓰지도 않는 갓을 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종로통을 활보한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국중박 뮷즈(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판매하는 기념품)가 동이 난다. 10월 25일 열릴 김천의 김밥축제도 대박을 꿈꾸고 있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메기 강 감독은 이 작품을 '한국문화에 대한 러브레터’라고 표현했지만 가장 K팝다운 콘텐츠가 한국산이 아니다. 최근 한류에서 나타나는 탈국가화 현상은 한류가 더 이상 ‘메이드 인 코리아’로 설명되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플랫폼과 자본의 힘이 커지는 상황에서 탈국가화된 한류는 그 수익이 한국에 얼마나 환원되는지도 의문이다.
메기 강 감독을 만난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 문화 산업이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이 비고 뿌리가 썩어가지 않느냐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한국문화의 힘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본격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JYP엔터테인먼트 수장' 박진영을 장관급인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에 내정했다. 강단에서 배운 이론으로, 정치에서 익힌 논리로 문화를 설명할 것이 아니라 대중이 즐기고 기운을 얻는 현장문화를 창조하여 한국문화를 키우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