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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970년의 과학력으로도 달에 갈 수 있었는데, 그 이후 반세기 넘게 인류는 달에 가지 않았을까?

정순현의 2교시 탐구생활

기사입력 2026-04-1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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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현의 2교시

1970년의 과학력으로도 달에 갈 수 있었는데, 그 이후 반세기 넘게 인류는 달에 가지 않았을까?

미국 나사(NASA)가 수행하는 유인 달 탐사 미션 아르테미스 II(Artemis II)’2642일 오리온 우주선 발사에 성공해 달을 한 바퀴 도는 비행을 수행했다. 인류는 1972년부터 아르테미스 II(Artemis II)가 성공될 때까지 반세기 동안 기술적으로는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달에 유인 탐사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영국 앵글리아 라스킨대학 도미니코 비치난차 교수가 설명하는 내용이다.

 

미국이 아르테미스 II 이전에 유인 달 탐사를 수행한 것은 1972년 아폴로 17호가 마지막이다. 역사상 6번째로 우주비행사가 달에 착륙해 72시간 동안 달에 머물렀고, 선장 유진 사난은 달에 발자국을 남겼다.

아폴로 계획에서는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총 12명의 우주비행사가 달 표면을 걸었지만, 그 이후 약 반세기 동안 유인 달 탐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에는 미국인들이 정기적으로 달()에 갈 수 있었는데, 다시 달에 가는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이미 1969년 아폴로 11호 시점에서 인류는 달 착륙이 가능할 정도의 과학력을 갖추고 있었다. 비치난차는 이것이 정치·자금·국제적 지원 체계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치난차는 원래 인류를 달에 보낸 아폴로 계획이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인류를 달에 보낸다고 선언한 1961년은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서로 냉전 한가운데에 있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 목표는 방위와 우주개발 측면에서 미국이 소련보다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는 의미도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이후에도 이 방침은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이어졌지만, 베트남 전쟁 장기화로 인한 전쟁비용 증가와 미국 내 개혁을 중시하는 정책 때문에 점차 우주개발에 대한 의지가 약해졌다. 실제로 NASA가 예산 정점을 맞은 것은 1966년이며, 아폴로 계획이 성공하기 전부터 감소세로 전환했기 때문에 초기 목표를 달성하자 아폴로 계획은 종료되었다.

지속 가능한 우주탐사에는 안정된 정치적 약속’‘예측가능한 자금’‘명확한 장기목표가 필요하지만, 아폴로 계획 이후 미국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우주왕복선 건설을 승인하면서, NASA의 초점은 심우주 탐사에서 저궤도 운용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후 1989년에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우주비행사의 달 정착 등을 내세운 우주탐사 이니셔티브(Space Exploration Initiative)를 발표했지만, 막대한 비용과 의회의 지지 부족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이후 빌 클린턴 대통령 아래에서 중단되었다. 2003년 컬럼비아호 참사(우주왕복선이 텍사스 상공에서 폭발하여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 이후 2004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달 탐사와 향후 화성 탐사를 포함한 우주탐사 비전(Vision for Space Exploration)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래에서 방침이 바뀌어 실현되지 못했다.

비치난차는 계속되는 우주개발 계획의 중단은 달 탐사 자금조달 시스템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지속 가능한 달 탐사 계획에는 여러 분야에 걸친 강력한 노력과 수십 년에 걸친 자금지원을 보장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계획은 매년 국방비·의료비·사회보장비와 같은 예산과 경쟁해야 한다. 선거에 따른 정권교체와 리더십 변동은 지속 가능성 전망을 더욱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근본적으로 왜 인류를 달에 보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도 과학적인 설득력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유인 달 탐사 임무가 얻을 수 있는 과학적 성과는 로봇에 의한 장기 탐사에 비해 제한적이며, 상업적인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폴로 계획 당시에는 냉전 속에서 소련보다 우위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냉전 종식 후의 세계에는 이런 대의명분이 없다는 뜻이다.

왜 아르테미스(Artemis) 계획이 과거 사례와 달리 성공할 수 있었는가?’물론, 향후 화성탐사를 위한 준비라는 과학적 정당성도 있지만, 비치난차는 상업 파트너십과 국제 협력이 큰 요소라고 주장한다.

아르테미스 계획에는 미국 정부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스페이스엑스(SpaceX)를 비롯한 민간 우주기업과의 상업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 그리고 달과 화성의 탐사·활용에 관한 국제 합의인 아르테미스 합의도 얽혀 있다. 이러한 요인들 덕분에 위험 분산과 정치적 지지 기반 확대가 이루어졌고, 아르테미스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비치난차는 아르테미스 계획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정치·경제·사회·과학 등 모든 요인이 결국 지속 가능한 형태로 일치했기 때문일 뿐이다. 하지만 그 일치가 입증되기 전까지 아폴로 계획과 아르테미스 계획 사이에 50년이라는 격차가 생겼다는 사실은, 공학적인 난제라기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게 지속 가능한 우주탐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일깨워 준 것이라고 말했다.

원문

Why has it taken so long to return to the Moon?

https://theconversation.com/why-has-it-taken-so-long-to-return-to-the-moon-274640

정순현의 티스토리 ‘Why, 궁금해 궁금해http://ququ99.tistory.com

노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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