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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와 난징의 독립운동가들 - 정상훈 책을 소개합니다

기사입력 2026-02-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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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합니다 - 노원중앙도서관 사서 정상훈

[김구와 난징의 독립운동가들]

장위안칭. 공명. 2024

일본은 이번 홍커우공원 폭탄 투척 사건을 모 한인단체와 관련지어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일망타진하려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애쓰고 있다. 진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구인장도 없이 무고한 한인들을 함부로 잡아들이고 있다. (....) 나는 이번 사건을 도모한 사람으로 인도와 정의를 위해, 그리고 일본의 침략 정책을 타도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도록 환기하고자 이 사건의 진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나는 이미 상하이에 없으므로 숨김없이 솔직히 말할 수 있다.” _신보(申報) 1932.5.10 ‘홍커우공원 폭탄 투척 의거에 관한 고함

윤봉길은 19324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 전승절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졌다. 시라카와 요시노리(육군대장), 가와바타 데이지(상하이 거류민단장)가 죽고, 시게미쓰 마모루(주중 일본공사) 등이 크게 다쳤다. 김구는 이 글을 신보(申報)에 보낸 후, 몸을 피한다. 조지애시모어 피치(미국 선교사)부부와 국민당의 장제스(국민당 정부 주석, 대만총통), 천궈푸(국민당 조직부장겸 장쑤성 주석), 천리푸, 인루리, 주칭란, 샤오정 등이 김구의 피신을 도왔다. 일제는 20만위안 현상금을 걸었다가 외무성, 조선총독부, 상하이 주둔 사령부가 연합해서 60만위안(현재 한화 355억원)을 내걸고 김구 체포에 총력을 다했다.

김구는 많이 배운 지식인 여성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 쉽게 신분이 드러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글도 모르는 뱃사공 주아이바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1932년 자싱에 온 뒤, 김구는 주아이바오와 함께 생활했다. 후에 난징으로 갈 때도 주아이바오와 함께 갔고, 1937년 김구가 급작스레 난징을 떠나게 되었을 때야 두 사람은 헤어졌다.

1990년대부터 중국에서는 김구와 주아이바오의 이야기를 엮은 소설과 연극이 나왔다. 1999년 인민문학(人民文学)출판사에서 소설 선월(船月)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한국어판도 출간되었다_106~108

주아이바오, 쑨구이룽 등은 355억원 현상금 수배자(장천치우, 장천, 장보보) 김구를 보호했다.

다음날, 간단한 계획서를 작성해서 보냈더니 천궈푸가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천궈푸는 장제스 장군을 대신해 이렇게 권유했다.

특무 공작으로 일왕을 죽인다 해도 일왕은 또 나올 것이고, 대장을 죽인다 해도 대장은 또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독립하려면 군인을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감히 부탁할 수 없어서 말을 못 했지만 그것이 내가 진실로 바라는 바입니다. 문제는 장소와 재력입니다.”_백범일지. 위 책 130

김군(김구선생)이 고려하고 있는 일은 후에 입제(천궈푸의 동생 천리푸)와 상의하도록 합시다. 비행기를 사는 일은 계획대로 하지만, 인원들의 훈련이 먼저이니 그 경비는 입제쪽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합시다.”

_19351월 천궈푸가 샤오정(임시정부 담당 국민당 간부)에게 보낸 편지

김구는 피난 생활 중에도 일본과의 전쟁을 준비했다. 광복군 양성은 국민당 정부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통해 일제를 응징하고, 임시정부를 건사하고, 외교전을 펼치며, 광복군을 양성했다. 독립지사 박찬익, 엄항섭, 이동녕, 김의한, 김철 등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도운 외국인들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김구, 문화의 힘으로 평화를 꿈꾸다

_김구 탄생 150주년유네스코 기념해&북큐레이션

노원중앙도서관 1층 로비 1.28~3.31

노원신문
 

112 (100-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