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록 시니어의 마을일기
부처님 오신 날 소요산 자재암으로
“차를 한 번 끌어주긴 해야 하는데!”
꿈속에서도 보일 지경이면 얼마나 오랫동안 차를 잊어먹고 사는 것일까? 아내는 가까운 데로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고 했습니다. 내가 또 망설이자 “그럴 거면 차를 아주 팔아버리자.”고 합니다. 그래서 멀지 않은 소요산으로 정했습니다.
탁 트인 도로를 주행하니 상쾌합니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산으로 들어갑니다. 현수막을 보고 초파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절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재암’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모노레일이 올라갑니다. 가파른 오른쪽은 108계단입니다. 난간에 붙은 글귀들이 발을 멈추게 합니다. 용도에 따라 멈춤이 없는 ‘물건의 길’과 생각이 많은 ‘사람의 길’이 계곡을 두고 같이 가는 것입니다.
‘원효대’는 아내도 금세 알아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찍은 사진들이 집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소요산으로 가자고 한 것도 사실은 ‘원효대’였습니다. 아내와 나는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때는 쌀쌀하고 단풍이 참 고운 계절이었습니다. 오늘처럼 날이 좋았지요. 그 어린 것들이 어느새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추억여행을 하는 서로를 바라보니 많은 일들이 햇살처럼 펼쳐지고 구름 같은 생각들이 바람결에 스칩니다. 비켜드린 일행에게 우리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선생이 쓴 「자재암 自在庵」을 마주하면 일중의 인연과 폭포를 닮은 글자의 응집력을 알게 됩니다. 절은 크지도 않고 넓지도 않고 낮은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장엄한 폭포가 발원하는 물줄기를 남기고 사자후를 토하면서 해탈하는 창공으로 솟구칩니다. 글자 그대로 ‘한가운데(一中)’입니다. 원효(元曉)의 소요자재(逍遙自在)에 일중이 연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로 사부대중이 저마다 인연을 지어 올립니다. 연등이 내걸리고 염불이 낭창하고 합장과 염원이 드높습니다. 눈길마다 손길마다 일중으로 회귀하여 자재무애(自在無碍)의 ‘둥글고 또한 밝은 빛’이 됩니다. 사람들은 몇 개의 발원을 안고 물처럼 바람처럼 속세를 정토로 적셔나갈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는 깊고도 무거워서 보살펴 주는 이를 잃지 않는다. 단 것은 뱉어서 자시지 않고 쓴 것은 삼키되 찡그리지 않는다. 애정은 무거워 숨길 수 없다. 은혜는 깊어서 차라리 서럽다. 아기 배부르기만 바랄 뿐 당신의 시장함은 사양치 않는다.」 오를 때 못 본 「부모은중경」 글귀에 뭉클하여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침 일찍 서두른 덕에 늦지 않게 돌아왔습니다. 쉬지도 않고 반찬을 하는 아내를 묵연히 바라봅니다. 오늘 자재암으로 나를 이끌어 주고 공양까지 해주시는 아내가 보살입니다. 아내가 있는 내 집이 나의 一中(한가운데)이고, 우리의 발원과 염원의 작은 정토입니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