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록 시니어의 동네일기
맨발로 가는 즐거움
맨발이 지압에 좋다고 합니다. 모든 신경이 발바닥을 지나므로 맨발로 땅을 밟으면 온몸을 자극해서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중계4동 주민센터를 지나 신발을 벗고 맨발이 됩니다. 흐드러진 진달래와 연두색이 뒤섞여 불암산은 온통 빛나는 생명의 축제입니다. 봄비에 젖은 땅이 간지럼 타는 두 발을 촉촉이 적십니다. 신발을 벗으니 신통하게도 무릎에 오는 충격이 사라집니다. 야자매트가 깔린 ‘둘레길’을 벗어나 가랑잎 수북한 갓길로 갑니다.
“발 아프지 않아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아프지 않아요. 지금 바로 해보세요.” 나는 미소를 짓습니다. 디딜 곳을 미리 보고 걸어가기 때문에 안전할 뿐 아니라 눈도 밝아집니다. 전망대 돌계단을 지나 양지 배드민턴 정자에 신발을 놓고 빈손이 되었습니다.
낙석방지 공사 중인 영신여고 뒷길을 빠르게 지나자 오묘한「음(陰)바위」가 나타납니다. 동네사람들은 자궁바위라고 했답니다. 이 바위에 통나무를 끼워 놓으면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고 해서 전에는 이 바위를 지키는 당번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동안 여자바위라고 안내판을 세웠는데, 너무 노골적이라고 하는 통에 안내판은 사라지고 목책만 남았습니다. 풍성한 담쟁이도 다 걷어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빙그레 사진을 찍고 그 앞에서 쉬어가는 명물입니다.
학도암 갈림길을 지나 사람들이 없는 윗길로 갑니다. 이 길은 야자매트도 없습니다. 발바닥이 후끈거리고 온몸에 땀이 돋았습니다. 푸닥거리하던 무당바위 아래 홀로 전설이 되어가는 고사목의 무늬를 어루만져줍니다. 나무의 내력이 손바닥으로 스며듭니다. ‘딱딱 따다닥 딱딱’ 나무를 쪼는 새 소리가 숲에 퍼집니다.
굽어진 길을 조금 더 가면 누워있는 ‘모아이 석상’의 골짜기입니다. 언제쯤 일어날꼬? 낙엽을 헤치고 올라가 「모아이의 코」를 붙잡고 내 숨결을 불어 넣어줍니다. 후드득 떨어진 진달래꽃 무더기를 피해 한 굽이를 더하면 백사마을입니다. 백사마을은 재개발이 한창입니다. 개발구역에서 제외된 텃밭들은 텃밭대로 또 봄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골짜기 찬물에 발을 부시고 나는 여기에서 되돌아 아랫길로 갑니다.
양지배드민턴 정자에서 다시 신발을 들고 나비정원에 도착했습니다. 곧 철쭉제가 시작됩니다. 나비정원의 조형물은 「헨젤과 그레텔」로 바뀌었습니다. 「아트포레」에서는 강지만 작가의 「마음을 찾는 순간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카페나 거리의 풍경, 그리고 사람과 동물이 같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동화로 그린 그림들이 정답습니다. 전시장을 나와 화장실에서 발을 씻고 신발을 신었습니다.
그 어떤 신발도 사람의 발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등산화는 등산로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맨발은 궁금한 곳이면 어디든지 갑니다. 사실 나의 맨발걷기는 만만치 않은 내력이 있습니다. 맨발걷기로 발가락 무좀이 다 나았고, 몸무게도 6~7kg이나 줄었습니다. 두툼했던 배가 사라진 것입니다. 따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습니다. 맨발걷기는 잠자고 있던 내 몸의 기능을 되살려줍니다. 눈도 밝아지고 관찰력도 좋아지고 심지어는 오싹한 소름까지도 되살아납니다. 맨발이 됨으로써 겸손해지고 산에 대한 예의를 갖추게 됩니다. 같이 가는 아내는 무엇보다 잠이 잘 와서 좋다고 합니다. 아내는 또 좋은 사진 모델이 되어 줍니다. 맨발걷기는 가정의 화목과 건강을 지켜주고, 다이어트까지 해주는 일석삼조입니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