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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선생님 김재창의 팔도유람 - 양평, 여주 여행

왕의 길을 따라 걸으며 생각하는 오늘

기사입력 2026-02-0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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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선생님 김재창

양평, 여주 여행

왕의 길을 따라 걸으며 생각하는 오늘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25년 장수비결 두번째가 걸어라, 열번째가 즐거운 여행이다. 여행하는 날 보통 하루에 2만보 이상 걷는다. 여행에 참여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다.

수도권에 있는 양평과 여주는 접근성이 좋아 평소에도 자주 가는 편이다. 양평은 두물머리, 세미원, 용문산, 용문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양평해장국의 발상지이고, 지평면에는 막걸리 회사인 지평주조가 있다. 여주는 남한강이 정중앙을 관통하는 상수원보호구역이다. 농업이 발달한 곳으로 고구마, (경기미), 참외 등이 있다. ‘임금님께서 드셨던 귀한 쌀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이번 여행은 양평의 용문사, 여주의 파사성, 이포보, 남한강출렁다리, 신륵사, 세종대왕릉이다.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용문사에 도착해 내리자 맑고 청정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용문산은 높이 1157m100대 명산이다. 용문사 경내까지는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울창한 숲속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운치 있다.

경내에 들어서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 은행나무가 굽어보고 있었다. 겨울이라 잎은 모두 떨어졌지만 커다란 고목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은행나무의 경이로움에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국내 사찰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은행나무다. 불상, 사찰 조각품을 만드는데 은행나무가 애용된다.

먼저 보물인 금동관음보살좌상과 정지국사탑 및 비를 찾았다. 모두 고려시대 문화재로 역사가 깊었다.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이 편안한 얼굴로 걸어가고 있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신라 파사왕 때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파사성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1800m이다. 성 정상(230m)까지 약 1km도 안 돼 쉽게 올랐다. 정상에 서자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이포보가 특이한 모습으로 강줄기를 가로막고 있었다.

가까이에 마애여래입상이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갔다. 커다란 암벽 가운데에 새긴 높이 5.5m의 거대한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옆 바위에서 솟는 약수를 마셨는데 10년은 더 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산성을 내려와 이포보로 갔다. 커다란 알 모양의 조형물이 있어 의아하였다. 배 모양의 이포보전망대는 이용하지 못하고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막걸리가 무료로 나오는 코다리찜 식당이었는데 손님들이 붐비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남한강출렁다리와 신륵사이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가슴이 탁 트였다. 드넓은 남한강과 여주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700m 거리에 있는 신륵사(神勒寺)로 걸어갔다. 일반적으로 절은 산속에 있는데, 신륵사는 강변에 세워져 있었다. 평지라 손쉽게 사찰 경내로 들어갔다. 규모는 웅장하지 않았으나 우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강변 절벽 위에 있는 정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신륵사에는 다양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어서 문화재의 보고이다. 법당 뒤 높은 언덕 위에는 세 개의 보물이 모여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普濟尊者石鍾)''석등' 그리고 '석종비'이다. 대부분 못 보고 그냥 지나친다. 그 외에 보물인 신륵사 다층석탑, 대리석 석탑 등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목적지 세종과 효종의 능으로 향했다. 두 임금의 능은 약 700미터 왕의 숲길로 이어져 있다. 이 길은 숙종, 영조, 정조 임금이 제를 올리기 위해 행차했던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왕의 발자취를 느껴 보았다. 이곳 왕릉은 관광지를 넘어 걷고 생각하기 좋은 장소였다.

김재창 010-2070-8405

노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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