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시 하나16
아파트
이진재 노원문인협회 회원
아파트
청약부금 몇 해 만에
겨우 분양받은 임대아파트
이사하던 날
큰애 친구들 몰려와
크고 작은 가구들 거뜬히 옮겨 놓았다
애들 어려서는
한 해 걸러 다녀야 하는 이사로
혼자 손에 너무 힘들었는데…
마침내 우리도
도시 개발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이다
밤이면
칸칸이 누워 잠드는 것이
마치 납골당 연상시키지만
그래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니
하늘 사다리 같고 편해서 좋다
쥐들이 난리치던 이층 다락방에서
아파트로 이사 오던 첫날 밤
“엄마, 우리 이젠 이사 안 다녀도 돼?“
“이게 정말 우리 집이면 좋겠다.”
두 아이, 기쁨과 아쉬움 내뱉는다.
-시집 『엄마의 세월』
‘1992. 1. 중계동 이사 오던 날’이라는 추기가 달린 시다. 33년 전의 기록이다.
이진재 시인은 한국일보사 기자와 중학교 역사 교사를 역임하면서 해외 어학연수도 다녀온 깨인 분이다. 그런 분도 홀몸으로 두 아들을 키우며 집을 장만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청약통장으로 서울도시개발공사가 지은 시영아파트, 그중 임대아파트를 '겨우’ 분양받아 중계동으로 이사했다.
화자가 곧 시인이라고 느껴질 만큼 노원 이주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1986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 공화국 노원에서 이진재 시인처럼 입주하는 날을 문자 기록으로 남긴 분은 몇이나 될까? 그래서 이 시는 '기록시'로서의 가치가 크다.
큰아들 친구들이 이삿짐을 옮겨주는 풍경이 정겹고, 아파트가 '납골당' 같기도 하고 '하늘사다리' 같기도 하다는 비유와 두 이미지의 대응도 재미있다. 가르침의 연륜이 깊듯, 시인이 시를 이해하기 편하게 써서 독자와의 거리도 아파트에서 보이는 하늘만큼 가깝다.
노원신문 김명화 기자 mhyb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