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신문 1081호 사설
소통의 위기, 정보사회의 위기
거짓말을 분간하는 언해력 훈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요즘의 정치는 정책이나 실천보다는 말만 가득하다. 매일 후보자들의 말 한마디가 뉴스가 되고, 그 말을 온갖 매체에서는 삶고 굽고 요리한다. 길거리에서 집중해도 잘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마이크를 통해 외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감흥이 없어지는데, 구글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말들에 아예 세뇌가 된 사람들도 많다. 다양하게 제공되는 정보를 이용하며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사회인 줄 알았더니 정보의 노예가 되어 거짓정보에 조종당하는 세상에 가까워졌다.
차분히 생각하면서 들어야 하는 후보자토론회마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후보자토론회가 5월 27일 오후 8시로, 한차례 남아 있다. 이번에는 정치분야다. 경제나 사회분야 토론에 비춰볼 때 이론도, 근거도, 실적도 필요 없는 주장이 쏟아질 것이다.
앞서 소개한 열다섯 살, 중2 김민서 소녀의 눈에는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쉽게 판단을 내리지만, 자신은 그 어떤 조언도 받지 않는다.(–너 말이야 너)’고 보였고, 그래서 ‘결국 서로의 대화는 모두 가면을 쓴 채 이루어진다(–단톡방)’고 했다.
스승의 날이 탄신일인 세종대왕께선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일이 많다. 이를 어여삐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배워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훈민정음, 한글을 창제하셨다. 정보사회에 가장 편리한 문자체계를 가진 덕분에 우린 이만큼의 현대문명을 편하게 누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제 뜻을 펼치는 것은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로 이뤄진다. 그런 소통이 관계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말 속에 숨어든 거짓말과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짧게 자판에 찍는 수준의 문해력은 사회갈등을 키우고 있다. 글을 읽고 쓰는 문해력(文解力)을 넘어 말을 듣고 하는 언해력(言解力)까지 오염되었다.
디지털 미디어가 활발하게 소비되면서 글은 영상으로, 영상도 15초 이내의 숏폼으로 바뀌었다. 직접 뛰어다니는 경험보다 손바닥 스마트폰으로 구경하는 세상이 더 재미있으면서 자발적 고립은둔도 번지고 있다. 한때 한자를 고집하더니 이제는 영어로만 말하는 사대주의 학자들이 세종대왕을 무시고, 끼리끼리의 이상한 컬트문화로 세상을 비꼬고 있다.
학교에서는 영어선생님이 단어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고 하니 ‘심심한 사과'의 맛은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먼저 의심해야 한다. 출처를 확인하고 다른 정보와 비교하며 다시 읽어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언해력을 키워야 한다. 내 말만 하고, 나만 맞는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과 상호작용하며 듣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물론 거짓 없는 진실한 자세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