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신문 1080호 사설
보기만 해도 배부른 이팝나무 가로수
민족의 생활사, 이 땅 생태계의 이야기
사람들은 다 꽃을 좋아한다. 넉넉하지 못했던 살림에 먹지도 못하는 꽃이 무슨 소용이냐고 타박도 했겠지만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 어르신 가슴에 꽃 한송이 달아드리는 것이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꽃이 풍성히 핀다는 것은 가을에 열매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시 채집인류는 꽃을 기쁜 징조로 보고 좋아했을 것이다. 또 그 먹이를 찾아오는 짐승도 많아질 테니 수렵인류에게도 배부른 신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생존의 법칙이 인류에게 미감으로 진화한 것으로 추리해 본다. 그래서 지금도 보기 좋은 꽃을 꺾지 말라고 어린 세대에게 훈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한 분홍으로 설레는 봄을 알리고 서둘러 떨어지는 벚꽃이 아쉽기만 했는데 5월 햇살에 길가에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예전 같으면 궂은 냄새가 거슬리기는 해도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 단풍을 하세월 기다려야 했는데, 최근에는 가로수 종류가 다양해져 꽃구경이 심심치 않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로, 병해충에도 강하고 관리가 쉬워 도심 가로수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하얀 꽃이 순쌀밥(이밥)을 닮았다고 하여 이팝나무라고 부른다고 전해온다. 보리고개를 넘으며 하얀 쌀밥을 그리워하던 시절에 부르던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 이팝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그렇지 않으면 가뭄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입하(立夏) 때에 꽃이 핀다고 하여 이팝나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4월 중순 곡우((穀雨)를 지나며 봄비가 내려야 만물이 푸르러지며 농사도 바빠진다. 가뭄이라도 들면 입하가 되어도 이팝꽃은커녕 꼬르륵 한숨이 깊어질 것이다. 나뭇잎 무늬를 프랙탈(Fractal, 비정규적 구조의 자기유사성) 이론으로 설명하고, 잎과 열매의 배치를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quence, 점화식 수열)로 해석하는 과학적 사고에 근접한 설명이다.
그런데 국어 음성학적으로 보면 ‘입하’는 ‘이파’로 소리내기는 해도 굳이 양순 파열음으로 닫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밥’을 종성음운 단순화에 따라 ‘이팝’으로 변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식의 특징을 반찬, 발효, 국물 등으로 설명하는데, 다양한 나물을 빼놓을 수 없다. 독성이 있다는 고사리, 두릅, 옻순, 토란대도 삶고 찌고 말려서 반찬으로 올린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풀을 먹는 민족이 되었다. 찔레순도 꺾어 먹고, 삘기도 뽑아 먹고, 소나무 속껍질도 씹어야 했으니 오죽 했으랴. 소출이 많지 않은 척박한 땅이기에 우리 민족은 이 땅에 자라는 풀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귀히 여겼던 것이다. 우리의 그런 생활사가 담긴 이름들이 민망하고 천박하다고 개불알꽃은 봄까치꽃으로, 며느리밑씻개를 사광이아재비로로 바꿔 부른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은 당연히 우리의 생활사가 담긴 이름이 붙기 마련이다. 그러나 학술적인 이름은 뒤에는 나카이(Nakai)가 붙은 경우가 많다.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과 연계되어 조선 식물의 일본화에 앞장선 일본의 식물학자이다. 수백 종의 한국 식물을 일본 명의로 학명을 부여해 국제 학계에 소개했다. 우리의 학자는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국제적 교류와 식물자원의 산업화에 따라 수많은 품종이 개발되어 영어 이름의 꽃과 풀이 이 땅을 물들이고 있다. 외래종이라고 뽑아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식량자원으로 들여온 황소개구리가 우리의 습지생태계를 교란한다고 했지만 이제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온다. 생각보다 토종 생태계가 약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새로운 종자가 나타나 움찔했지만 잡아 먹히는 것도 있지만 이놈을 잡아먹는 먹성도 생겨난다.
세상을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살 수는 없다. 수많은 원인이 수많은 결과를 낳는다. 조금 더 넓게 깊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