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신문 1073호 사설
너와 내가 달라서 재미있다
다양성이 지속가능성
오늘날 우리는 다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매우 까다로운 문제인 지속가능성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을 채비하는 동네 뒷산이라도 올라가 보자. 나무 한 그루만으로 숲이 되는 것이 아니다. 숲에는 풀도 있고, 벌레도 있고, 바람도 있고, 졸졸 흐르는 시내도 있다. 그 속에서 누구는 고요히 산책하고, 누구는 새싹을 반기고, 누구는 옹달샘 물 한 잔에 생명을 얻는다. 그처럼 다양성(Diversity)이 있는 존재는 가능성을 만든다.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 또는 반응은 공생(symbiosis)이든 포식(predation)이든 관계망을 형성하고, 다양한 관계가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총 5번의 지구 생명 대멸절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생명은 대응해서 살아남은 것, 그 지속가능성이 6번째 대멸절을 슬기롭게 맞이하는 방법일 것이다.
나만 살지 않는다. 어떤 생명이든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가능성이라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건 생태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숲을 찾아 학교로 달려간 이학송 생명의숲 전문위원은 그곳에서 나무를 살피고, 정원을 둘러보는 것에서 출발해 아이들이 뛰놀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찾아냈다. 나무와 풀들이 그런 것처럼 그 아이들 하나하나가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른 배경과 정체성, 특성을 가졌기에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다름을 모두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위기는 기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주장하는 해결방법이 너무 달라 빨리 해답을 정할 수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나의 목소리만 크게 외치는 게 위기이다. 부족한 정보임에도 확정적인 신념을 가지는 건 매우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다. 그건 문제를 빨리 풀어낼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번의 실패로 모두를 절망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한번, 두 번, 세 번의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는 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을 인정해야 한다.
수많은 관계와 경쟁에 우리는 분명 지쳐 있다. 누구는 이불 깊숙이 들어가 움츠리고 있고, 누구는 광장에서 외치며 불안을 감추기도 한다. 요즘 ‘아주 보통의 하루’를 무사히 맞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원대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좇기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챙기기도 힘들었는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까지도 내려놓았다.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일들이 매일 벌어지는 세상에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양성이 존중과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방임은 절대 아니다. 구경꾼이 많을수록 방관자가 되어 위험에 처한 사람이 구조되기 어렵게 된다는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은 이웃에 대한 관심, 책임감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