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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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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덕정 노원문인협회 회장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쾌거를 접하며

「소년이 온다」를 읽고

기사입력 2024-10-1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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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수상 쾌거를 접하며

소년이 온다를 읽고

배덕정 노원문인협회 회장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차 한잔 마주하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에서 까똑 까똑 소리가 이어졌다. 또 북한이 오물풍선을 날리기 시작했다는 문자인가 열어 보니 소설가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쾌거라는 글귀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가슴 벅찬 뉴스를 검색하느라 냉커피 얼음이 다 녹는 줄 모르고 검색을 거듭해 한강 작품에 빠져들었다.

e북으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자마자 한동안 내 정신세계를 흔들어 놓았던 잔인한 트라우마가 다시 도졌다.

나와 여동생은 영혼이 탈탈 털리는 아픔을 푸릇푸릇한 나이에 경험해야만 했다, 믿기지 않은 5.18의 실상을 직접 목도하는 전장에 동생과 나의 청춘이 머물러 있었다. 광주에 있는 학원에 등록해 일주일도 수강 못한 채 우익도 좌익도 아니었던 나의 기억 속 학원 칠판엔 총탄자국만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소년이 온다작품 속에 도청, 상무대만 등장해도 태극기로 덮어놓았던 이름 모를 주검들, 자식 이름을 부르다 쓰러지는 어머니들, 곳곳의 검붉은 주검들이 떠올라 나를 슬프게 했다. 당시 도청 앞에 모여든 광주시민들은 줄지어 주검들을 확인하며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입을 틀어막으며 기함했다.

나는 피로 흥건하게 물든 주검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당시 광주에 같이 살던 언니가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생명이 태어나는 데 좋지 않은 것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염없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 , 군 모두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19805월 광주는 그렇게 우리 역사에 피비린내 나는 흑역사로 남았다.

교통수단도 통신도 끊긴 암울한 시간이 지나고 속이 타들어 가도록 자식들의 소식을 기다렸을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내려갔다. 어머니는 호밋자루를 내던지며 딸 둘 잃었구나 생각했다며 흙 묻은 손등으로 연신 눈물, 콧물을 찍어냈다.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을 즈음 나와 동생은 다시 광주에 돌아갔다. 내가 본대로 느낀대로 끄적인 5.18에 대한 기록은 오라버니가 혹여 불똥 튈까봐 불태워 버렸다고 했다. 당시 무서운 소문들이 입에서 입으로 흉흉한 전파를 탔기 때문이었다. 사진과 필름 같은 것도 없애야 한다며 단도리를 했다. 나는 오라버니가 동생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불태웠구나 싶어 입만 샐쭉거리고 말았다. 언제든 다시 기억을 되살려 쓰면 되지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목도한 그 파란만장한 청춘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나는 한동안 끄적거림조차 하지 않았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19805월 광주의 전장에서 날개 부러진 청춘들이 나처럼 서릿발 추위에 떨고 있음을 발견했다. 소름이 끼쳤다. 1980년대를 거친 우리는 청춘의 한 단면이 끊어진 채 긴 터널을 지나왔다. 망각만이 소시민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치 내가 썼던, 오라버니가 불태워 버린 일기를 보는 듯했다. 섬세한 필치로 담담히 써 내려간 5.18의 잔혹한 실상을 보며 애써 잊고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전쟁 같은 흑역사를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기록문학으로 남겼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인 양 모두들 기뻐하며 축포를 터뜨리느라 단톡방은 연일 뜨겁다. 그 어떠한 표현으로도 모자랄 축하를 광화문에서 2002년 월드컵 축구 응원하듯 한강! 한강! 으쌰! 으쌰!” 응원하고 싶다. 우리도 한강 작가처럼 5·18의 가슴 뜨거웠던 영혼들의 넋을 기리면서.

 
노원신문

56 (100-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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