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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실종 사회를 대변하는 능력

다양성, 개성이 경쟁력이어야 한다

기사입력 2024-03-1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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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 1032호 사설

평균 실종 사회를 대변하는 능력

다양성, 개성이 경쟁력이어야 한다

23년 우리나라의 1인당국민소득은 33745달러(4405만원)로 전년 대비 2.6%(원화 기준은 3.6%) 늘었다. 22년에는 대만(33642달러)보다 낮은 세계 40위를 기록했지만 다시 역전했다. 하지만 아직 15년의 35522달러에는 못 미친다.

그래도 평균소득이 4400만원이라고 하면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엄청 많을 것이다. 십수년을 열심히 일했는데도 평균소득에 못 미치는 사람이 50%를 훨씬 넘는다. 평균값을 상승시키는 부자가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박탈감은 사회적 갈등이 된다.

그래서 통계에는 현실을 좀 더 설명할 수 있도록 중위값을 도입한다. 소득수준에 따라 일렬로 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액이 중위값이다. 24년 대한민국 기준 중위소득은 4인 가구 기준 5729913, 1인 가구 기준 2228445원이다. 23년 대비 각각 6.09%, 7.25% 올랐다. 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복지제도의 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활용되는 중요한 지표이다. 1인당 국민소득과는 차이가 난다.

평균소득을 높이려면 빈부와 관계없이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일정하게 제공하면 된다. 소득 그래프는 오른쪽으로 이동하지만 양극단의 간격, 즉 소득 격차는 줄지 않는다.

고소득자의 소득세 누진을 강화하면 그래프의 오른쪽 극단이 안쪽으로 당겨지고, 그것을 재원으로 맞춤복지를 시행하면 저소득자의 소득이 늘어나 왼쪽 극단이 안쪽으로 당겨져 극단 간의 거리가 짧아진다. 이러한 정책은 고전적 평균 사회, 정규분포일 때 가능한 정책이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지고, 욕구의 표현도 가지각색이다 보니 평균실종의 사회가 되었다. 한쪽에는 가성비를 따지면서 한쪽에서는 명품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양쪽 극단이 존재해도 대칭의 그래프라면 2개의 정책, 3개의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다원화, 다극화된 세상에는 여러 방향이 존재한다. 자율성, 개성을 존중하는 길로 가면 개인의 자유, 사회의 다양성, 창의적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제 목소리를 내는 데만 열정적이어서 상대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같은 용어로 설명되는 행동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는 분열이 된다. 결국 자기로의 단일화를 외치는 극단적 대결의 사회가 된다.

머리띠를 두르고 고함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검사들이 뛰어다닌다고 부정부패가 정리되지 않는다. 소통의 수단은 많아지는데, 개개인이 수많은 메시지를 발신하는데 불통의 시대이다. 검증되지 않는, 그래서 책임도 지지 않는 키보드 전사들이 횡횡하는 사회이다.

선거는 유권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대표를 뽑는 것이다. 내가 꼴 보기 싫은 놈을 처단하는 인민재판이 아니다. 유권자 개개인이 각자 살아온 만큼, 또 살아갈 만큼 판단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 또 유권자다.

요즘 정치는 여야를 구별할 것 없이 아군이 아니라 내부에서 암약하는 간첩 같다.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32 (100-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