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들의 외식 이야기 “오늘 뭐 먹지?”
서울생활사박물관 3월 31일까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밖에서 음식을 먹는다’라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외식은 좋은 사람들과 만남,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시간, 그리고 나만의 취향을 즐기는 것이 되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서울의 오래된 음식점과 음식 문화거리를 조사해 서울사람들의 외식문화를 연구한 성과를 담은 기획전시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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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채우는 식탁_ 1950년대 ~ 1970년대 중반
해방 이후 서울은 한강 이북, 즉 강북 중심의 도시였다. 서울 사람들 대부분은 화이트칼라(White-collar, 사무직 노동자) 혹은 블루칼라(Blue-collar, 생산직 노동자)였고, 서울의 노동자들은 봉급에 의존해 가족 생계를 꾸려가는 샐러리맨이었다. 이들은 직장에서 점심을 사 먹고, 퇴근길 술집에서 저녁 식사나 술과 안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 시기 서울의 대표적인 끼니형 음식점 메뉴는 설렁탕, 해장국, 곰탕, 추어탕 등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는 끼니형 음식이 지속되는 한편, 중국집과 분식점 등이 유행했다. 당시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정부는 절미(節米)운동과 혼분식장려 운동을 펼쳤는데, 강력한 행정력이 동원되었기 때문에 서울 곳곳에 분식 음식점이 크게 늘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의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우동·울면·짬뽕과 같은 국수류를 많이 판매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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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나누는 식탁_ 1970년대 후반 ~ 1990년대 중반
서울의 인구는 해방 후 100만여 명에서 1967년에는 400만여 명, 1979년 800만을 넘어 1993년 말에는 1100만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산업화 정책에 따라 농촌을 떠나와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로 인해 서울의 인구밀도는 높아졌고, 이를 낮추기 위한 지역의 확장과 인구 분산 정책은 불가피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서울 도심-여의도·영등포-영동(강남)’을 잇는 ‘3핵 도심’ 구상과 강남 개발이 이어지면서 서울은 점차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970년대 후반, 강남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이 되면서 강남 아파트값이 폭등하며 신흥 중산층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주말이 되면 자가용으로 함께 외출해 전원(田園)에서 식사를 즐기는,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는 ‘현대적 외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대형 갈빗집은 경제 능력과 특유의 생활양식을 갖춘 중산층 가정의 외식문화를 대표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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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즐기는 식탁_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
1984년 완공된 지하철 2호선은 강북과 강남을 연결해 그동안 소외되었던 부도심권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와 함께 도시 부심에는 샐러리맨, 노동자,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 골목이 형성되었다. 왕십리의 곱창 골목과 신림동 순대타운이 대표적이다. 이 음식 골목들은 처음에는 노동자, 대학생처럼 가난한 서민들이 주 고객이었다. 그러나 곱창, 순대의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하철 2호선을 통해 강남의 식객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의 서울은 세계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 거주가 늘어나고, 동시에 한국인의 외국 관광과 체류가 활발해진 시대이기도 했다.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양꼬치거리는 서울의 세계화 과정에서 생겨난 중국음식점 집중 지역이다. 아울러 직장인과 관광객이 공존하는 삼성동 코엑스 근처 삼성동 음식문화 특화 거리 역시 다양한 음식점들과 메뉴를 통해 현재 외식문화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글 황혜전 서울생활사박물관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