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고개 임관철의 실크로드
우즈베키스탄(1) 오아시스의 한국 열풍
고구려인의 서역 진출과 고려인의 강제이주
키르기스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직접 국경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으로의 입국과 출국은 두 번씩 했다. 타지키스탄 판자켄트에서 고대도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까지의 여정은 순탄했다. 이제부터 여정은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타슈켄트이다.
실크로드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박물관 벽화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인,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로 7만여 명 고려인, 그 이후 1992년 국교 이후 언어, 경제, 정치, 문화 등 교류로 많은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다. 거리의 자동차도 한국 상표의 차들, 특히 자국 생산 자동차 우대 정책으로 현지에 공장을 세운 대우자동차와 대우를 인수한 회사의 자동차가 많이 보여 흐뭇했다. 한국어를 소통할 수 있는 현지인들도 많았다. 1997년 외국인 대상 최초 한국어 능력시험(Topic)이 중국, 일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4국에서만 시행되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은 나라다. 현재도 토픽 응시자가 전체 국가 중 5위이다.
사마르칸트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사마르칸트-문화교차로’이다. 도시 전체가 보물이며 고대 오아시스 문명의 찬란한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직도 발굴 중이거나 복원하고 있는 유적이 많다. B.C. 6세기부터 현재까지 중앙아시아의 흥망성쇠와 관계없이 중요한 중심 도시였다.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 신라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도 나오는 곳이다.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레기스탄 뒤쪽에 숙소를 정했다. 기온이 40도를 넘으니 낮에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가까운 곳은 도보로, 먼 곳은 택시를 이용하여 다녔다.
‘레기스탄 마이도니’은 모래땅 광장이란 의미로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3개의 아름다운 비취색 건물 메드레세(이슬람대학교)가 있다. 중앙 건물로 들어가니 옛 비단길 상인처럼 많은 상품을 진열하고 팔고 있었다. 고급 상품을 파는 곳은 통제 구역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입장을 허락하여 화려한 문양의 양탄자와 세밀하게 가공한 귀금속 등을 관람했다. 건물 외부는 물론 내부의 벽과 돔도 푸른색 계통의 벽돌로 찬란하고 화려하게 장식해 우리는 감탄을 연발했다. 야간에 보는 레기스탄은 연록색 불빛과 어우러져 더욱 황홀하고 신비로웠다.
‘아프로시압 박물관’ 견학은 특별했다. 정문 앞에는 ‘실크로드우호협력기념비’라는 한국어 비석이 있었다. 박물관 안의 관광객은 우리를 포함하여 몇 명뿐이었고 근무와 연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박물관의 궁전벽화에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구려인이 그려져 있어 6~7세기에 우리민족이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로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나오는 곳이다. 우리나라 국립국제교육원의 협력으로 벽화를 3D로 복원하였고, 해설 3개 언어 중 한국어로 된 설명과 영상으로 감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가까운 곳의 언덕은 아직도 유물발굴이 이어지고 있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묻혀 있는 도시지만 경제 사정으로 발굴이 되지 않는 곳이 많아 안타까웠다.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국제적인 협력으로 발굴이 되기를 기대한다. 슬픈 사연이 담긴 비비하님모스크, 티무르와 아들과 손자의 묘인 구르아미르, 사히지다영묘 등 관람할 곳이 많은 곳이다.
부하라 구도심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도시다. 12C에 부하라제국은 몽골 침략에 끝까지 저항했다는 이유로 침략자들은 도시를 완전하게 파괴하여 폐허로 만들었다. 지리적 특수성으로 14C 중앙아시아의 지배자인 티무르에 의해 재건된 도시다. 샤마니 영묘는 현재 중앙아시아 최고의 건물로 왕족 무덤이며 지붕은 둥근 반원이고 우주를 뜻하며, 바닥은 사각으로 땅을 상징한다고 했다. 구시가지는 걸어서 모두 관람이 가능했다. 주위 광장에서는 민속 음악과 춤을 공연하였으며 많은 모스크와 건물 등 하나하나가 모두 유물이었고 예술이었다. 건물 속에서 파는 수공예품 많았다. 한국에서 살았다는 장인에게서 수공으로 직접 만든 칼을 이름까지 새겨 기념으로 샀다.
부하라 주민들의 민속춤
여행하면서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에 왔다 돌아온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친절하게 대하지만 현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한국어를 이용하여 바가지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통요지의 택시기사는 부르는 가격이 2배 이상이다. 숙소를 잘 정하고 주인의 소개로 택시를 타거나 기차를 타면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