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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고개 임관철의 파미르고원의 실크로드 - 타지키스탄(1)

실크로드는 국경분쟁과 산사태, 길이 끊어져

기사입력 2022-09-09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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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고개 임관철의

타지키스탄(1) -파미르고원의 실크로드

실크로드는 국경분쟁과 산사태, 길이 끊어져

타지키스탄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길만 험한 것이 아니라 여정 또한 변경의 연속이었다. 2021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분쟁 때문에 직접 타지키스탄으로 갈 수도 없었다. 불확실한 국경지역의 저수지 물 배급 문제로 주민 싸움에서 군인 충돌로 커진 사건이다.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물싸움이 심각하다. 건조지역이지만 동쪽 높은 산맥의 만년설 녹은 물이 큰 강을 이루어 서쪽으로 내려가는데 그 배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들 여정 또한 나린을 거쳐 옛 실크로드를 따라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계획이었지만 산사태로 끊어졌다. 할 수 없이 다시 나린에서 비슈케크로 되돌아 와서 버스를 타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향했다. 12~13시간이 걸린다. 국경에서는 많은 짐을 다 내려서 짐 검사를 다시 받아야 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타지키스탄 후잔트까지는 포장된 길 120km이다. 국경을 넘을 때 한국의 여권이 힘을 발휘했다. 우리말을 어눌하게 하는 공안들이 자랑스럽게 말을 건넸다.

후잔트는 타지키스탄 제2의 도시다. 일요일은 은행과 환전가계가 문을 닫아 길거리 환전상에게 돈을 환전했다. 이 도시는 몇 천 년 고도이지만 현대화로 아파트가 즐비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날아 온 황사 때문에 하늘이 뿌옇다. 여기까지 와서 또 다시 황사를 만나다니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목과 눈도 아프고 여독도 풀리지 않아 힘들었다. 파미르 고원 일부라도 보고자 왔건만 타지키스탄은 첫날부터 고행이다.

옛날 알렉산더대왕이나 당나라 때 고구려유민 고선지 장군이 거쳐 갔다는 이 길을 우리는 차로 달렸다. 타지키스탄은 국토의 93%가 평균 고도 3000m 이상으로 5000m 이상은 되어야 산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수도 두산베로 가는 길은 험준한 산들을 수없이 넘어야 했다. 비좁고 구불거리는 비포장도로는 확장하는 중이다. 천 길 낭떠러지에 그대로 노출되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가끔 만나는 지상에 노출된 길 가운데 콘크리트 터널 구조물은 산사태로 길이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했다. 오전 7시에 출발한 우리들은 아이니 마운틴을 넘어서 15시에 두산베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타지키스탄에는 고려인과 교민은 많지 않다. 300여명이며, 치안이 불안하여 교민들은 비상연락망을 준비하고 혹 한국여행객의 안전에 대비한다고 한다. 타지키어는 알타이어 계통이 아닌 옛 페르시아계인 유럽 인도어족이어서 영어와 어순이 같다.

국경을 접한 중국, 아프가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과는 종교와 국경, 물 등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도 1000달러 내외로 가난하다. 세속 이슬람의 수니파가 다수이다. 아직도 강대국의 이해가 얽혀 복잡한 구조다. 중국은 원조를 미끼로 서울의 2배 정도 면적을 차지하며 국경분쟁을 마무리 했으며, 미국과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대립하지만 여기 타지키스탄에서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극단 이슬람을 차단하기 위해 협력하는 곳이다. 타지키스탄은 라흐몬 대통령이 30년 가까이 집권하고 있다. 

두산베도 보여주기 위한 도시처럼 잘 정돈된 느낌이다. 특히 중심도로를 중심으로 양쪽 아름드리 가로수가 환상적이었으며, 이어진 중앙(루다키)공원은 잘 다듬어진 공원이었다.
 


더위와 황사가 있었지만 다시 오기 어려운 곳인 만큼 인내를 시험하며 관광했다. 타지키인들이 자랑하는 페르시아 시인 루다키 동상과 국부 영웅 소모니 동상, 국립도서관 등을 돌아보았다. 루다키와 소모니는 타지키인들이 가장 강성했던 사마니드 제국(819~999) 때의 사람이다. 루다키는 눈이 멀었음에도 페르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칭할 만큼 위대한 시인이었고, 이스마엘 소모니는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 형성에 큰 공을 세워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처럼 존경을 받는 인물로, 통화인 소모니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소모니는 우즈베키스탄의 페르카나 지역에서 태어나 부하라에서 숨을 거둔 위대한 왕이었다. 그가 타지키스탄이 아닌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고 죽은 이유는 소련이 주 경계 설정 때 우즈베키스탄에 인위적으로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소련은 타지키인이 대부분인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을 타지키스탄이 아닌 우즈베키스탄에 편입시키고 우즈베키스탄인이 많았던 후잔트 등은 타지키스탄에 편입시켜 지금까지도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 나라의 시조이자 영웅도 같은 나라로 편입하지 못한 약소국의 비극을 먼 이곳에서도 느꼈다.

노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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