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고개 임관철의 파미르고원
타지키스탄(2) 파미르고원의 실크로드
치열한 생존경쟁과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심
타지키스탄이란 명칭은 마지막까지 튀르기예(터어키)화 되지 않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5국 중 유일한 이란(옛 페르시아)계 나라이다.
수도 두산베에 있는 유일한 한국식당 ‘가야’도 한국계가 아닌 타지키계 사장이 운영하였다. 그럭저럭 한국의 맛을 내었지만 무엇인가 부족했다. 후잔트에서부터 가이드를 한 청년은 정보가 부족하여 함께 하기가 어려웠다. 인터넷 검색으로 ‘마시따’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빵집을 찾아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사장이 아름다운 안좁계곡까지 직접 운전하며 소개하였다.
황사로 뿌연 황무지의 산만 보다가 이곳으로 오니 타지키스탄의 진정한 경치와 유목민의 생활을 볼 수 있었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노천에 많은 석탄을 쌓아 놓았다. 짧은 여름에 노천 광산에서 채취하여 이곳에 놓고 판다고 한다. 6개월 이상 긴 겨울을 대비하여 지금 한창 석탄을 준비하고 운송한다고 한다.
3000m 이상의 계곡에는 많은 물들이 흘렀고 그 계곡 주위에는 가축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야생화는 산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개화한다. 꽃을 따라 다니며 꿀을 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직 꿀을 따지는 않아서 청정의 꿀맛은 맛볼 수 없었다. 마지막 텐트에서 장사하는 한 가족은 빵 몇 개와 차만 가지고 초라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생명의 원천인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할머니는 그 옛날 어렵던 시대 초라한 우리들의 할머니 모습이었다.
두산베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방법은 우리가 처음 두산베에 온 것처럼 아이니에서 북쪽으로 타지키스탄 국경도시 후잔트를 지나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시켄트로 가거나, 중간 아이니에서 갈라져 서쪽으로 타지키스탄 국경도시 펜자켄트를 거쳐 고대도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로 가는 방법이 있다. 두산베에서 아이니까지는 험한 히소로산맥과 자라프손산맥을 넘어야 했다.
아이니에서 펜자켄트까지는 제라프샨 강을 따라 길이 나 있다. 판자켄트에 다다른 강은 주위의 많은 계곡에서 내려온 물과 합쳐서 거센 물결을 이루며 마치 시멘트를 탄 물처럼 부옇게 흘렀다. 판자켄트의 첫 인상은 거지들이 많았다. 모스크와 시장이 있는 중앙로 양쪽에는 애기를 업은 여인부터 어린 아이, 노인, 장애인 등이 구걸하고 있었다.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스크에서 예배를 할 때면 모스크를 중심으로 메인 도로를 막고 차 없은 도로가 된다. 모스크가 만원이 되어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도로에 자리를 깔고 앉아 기도를 했다. 도시 전체가 예배를 위해 모든 활동은 멈추었고 모스크의 예배 소리만 들렸다.
펜자켄트에서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세븐 호수가 있다. 맑고 깨끗한 엄청난 양의 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고 그 계곡을 따라 많은 마을들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차들이 지나가면 어린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수공으로 제작한 팔찌나 목걸이를 팔고 있었다. 차 한 대가 지나가면 10명 이상의 아이들이 몰려 매우 위험했다. 달리 돈을 벌기 어려운 이 산골에서 한국 돈 1,000원 정도의 수공품을 팔기 위해 경쟁이 심했다. 한국의 아이들은 학업경쟁이 심하지만 그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있었다. 목가적 생활을 그리워하며 여행 온 문명인들이 이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평화롭고 순수한 전원생활의 여유로운 모습은 그들의 현실 속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이다.
제6호수까지는 차로 이동할 수 있지만 마지막 7호수는 차가 들어 갈 수 없는 좁은 길이다. 예전 비단길을 걷는 옛 사람들처럼 걸어서 올라갔다. 걷다 보면 이 아름다운 산속에 집들이 있고 마을이 있으며 사람들이 있었다. 큰 배낭을 메고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캠핑족들도 만날 수 있었다. 헉헉대며 올라가고 있는데 어린 소년이 나귀에 짐을 싣고 왔다. 하루 한 번씩 산 아래에서 깊은 산속 마을까지 짐을 옮기고 운임을 받는 것 같았다. 비탈길을 지나 좀 평평한 길에서 나귀를 태워 준다. 조그만 나귀에 몸집이 큰 나를 태울 수 있단다. 나귀를 타고 나서 어린 짐꾼에게 보답을 하려하니 돈을 받지 않았다. 아직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모습에 감동했다. 아래 마을에서 본 아이들의 행동과는 다른 평온한 얼굴이었다. 주머니에 있던 연필을 주니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이 소년은 7호수를 지나 높은 산 몇 개 더 너머에 있는 마을로 간다고 손짓을 알려 주었다. 고산 속에 숨어 있는 제 7호수 맑은 물에 손을 담그니 옛 신선이 된 기분이다.
노원신문
제7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