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록 시니어의 마을일기
당현마루 노원 시니어 한복 축제
나비 날고 벌도 오고 재촉하는 걸음걸음
산을 넘어오신 님들 물을 건너오신 님들
앙증맞은 종종걸음 아장아장 안고지고
살랑살랑 저고리 할랑할랑 곰방대
곱게 올린 가채머리 좌악 펼친 쥘부채
애지중지 고운 눈길 어화둥둥 내 사랑
아쉬운 듯 모자란 듯 넘칠 듯이 남실남실
씨줄 날줄 한 세상을 섬섬옥수 품은 날들
풍악소리 드높은 날 예서제서 모여들어
꽃처럼 바람처럼 너도나도 너울너울
흘러가는 물소리도 맴을 돌아 듣고 보고
당현마루 한복마당 얼쑤 좋다 박수갈채
시니어 한복 패션쇼를 본 것은 처음입니다. 늦지 않게 당현천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왜가리는 물소리에 발을 걸고 꽃나비는 우거진 벽화에 숨을 불어넣습니다. 색소폰 소리에 버들가지가 춤을 춥니다. “벌써 시작됐나?”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당현마루는 사람들로 붐비고 한복들은 행렬을 짓습니다. 다행히 예행연습입니다. 많은 분이 벌써 자리를 잡고 계십니다.
한복도 사람만큼이나 색상도 모양도 가지가지입니다. 어렸을 적에 밭을 매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적삼은 박수근의 「빨래터」처럼 편했습니다. 갓을 쓴 할아버지가 두루마기에 대님을 치고 아버지와 함께 친척의 결혼식에 가실 때 한복은 근엄했습니다. 나도 아이들이 결혼할 때 아내랑 한복집을 갔는데, 그땐 대여료가 비쌌습니다.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한 자리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한복을 본 것은 처음입니다.
시니어들의 워킹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세상 만만치 않게 살아오신 경륜들이 다 묻어납니다. 단정하신 걸음과 어여쁘신 맵시에 박수와 환호가 터졌습니다. 그런데 잘 차린 한복들은 왠지 내 속을 찡하게 울려줍니다. 그 한복 너머로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옛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자리에서 웬 청승이란 말인가?” 나는 속히 눈가를 찍어 누릅니다. 마음에 남은 잔영을 밀어내면서 빠르게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습니다. 나도 그 속으로 스며 들어갑니다. 한복으로 어우러지니 다들 고우십니다. 누님뻘인 고영기 선배님도 ‘메이퀸’이십니다.
옷도 사람도 자주 봐야 정이 듭니다. 그런데 한복은 격식을 갖춘 전문가들의 영역이 되고 권위가 더해져서 쉽지 않은 옷이 되었습니다. TV로 사극을 볼 때도, 고궁에서 한복 입은 관광객을 볼 때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한복은 그런 데서나 보는 옷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노원 시니어모델 아카데미의 ‘한복 패션쇼’는 낯설어서 더 귀하게 된 우리의 한복과 원숙한 시니어들을 다시 바라보게 했습니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당현마루」도 이런 호사는 처음일 것입니다. 쉽고 편한 한복으로 당현천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한복이 행사장을 걸어 나와 일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일행에게 음료와 스낵을 사 주신 전종하 주민자치회 부회장께 감사드립니다. 가을에도 멋진 행사를 또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