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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맛집 - 백년의 맛을 만들어가는 상계역 골목 ‘꿀돼지’

노릇하게 익어가는 두툼한 앞다릿살, 선지해장국

기사입력 2026-06-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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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맛집

백년의 맛을 만들어가는 상계역 골목 꿀돼지

노릇하게 익어가는 두툼한 앞다릿살, 선지해장국

필자는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1982년 대학 복학을 계기로 노원과 인연을 맺었고, 대학 졸업 후 잠시 신혼 시절 다른 지역에서 생활한 기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40여 년 넘게 노원구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오고 있다.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주민들을 만나고, 재선 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노원구 인구는 63만 명 안팎이었다. 당시 노원은 송파구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도시였다. 그러나 지금 노원의 인구는 50만 명 선이 무너져 48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인구 감소처럼 보이지만 지역 상권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변화였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상계역 상권을 걷다 보면 이제는 예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임대'라는 두 글자다.

빈 상가가 아니다. 빈자리다. 오랫동안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떠난 자리이고,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자리다. 상권의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붙어 있는 '임대'라는 글씨는 마치 상권의 심장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상계역 상권이 어려워진 이유는 맛집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14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줄어들면서 상권 자체가 위축됐고,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맛집들 역시 예전 같은 활기를 누리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런 상계역 골목 한편에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이 있다. 바로 상계역 1번 출구에서 작은 블록 두 개만 지나면 만날 수 있는 고깃집 '꿀돼지(대표 김석현 02-939-2275)'. 이 집을 찾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지금은 노원을 대표하는 동네 맛집 가운데 하나가 됐지만 처음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주인 부부는 30대의 젊은 신혼부부였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부부 모두 50대를 넘어섰다. 하지만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의 맛은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 맛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백년의 맛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 집에 앉으면 먼저 서비스로 선지해장국이 나온다. 뜨끈한 국물 한 숟가락에는 오랜 단골을 향한 주인장의 정이 담겨 있다. 필자가 가장 즐겨 찾는 메뉴는 소금구이다. 600g에 소주 한 병을 곁들여도 3만원. 3인분이다.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가격이다.

불판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두툼한 앞다릿살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적당히 익은 고기를 큼직하게 잘라 입 안에 넣는 순간 육즙이 터진다. 제주에서는 이 부위를 '전각'이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 제주에서는 최고의 부위로 대접받았다. 귀한 손님이 오면 전각을 내놓았고 가격 또한 비쌌다. 반면 지금 최고의 인기 부위인 오겹살과 삼겹살은 당시에는 비계가 많다는 이유로 '숭이'라 불리며 가장 저렴한 부위에 속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입맛도 바뀌었다.
 

꿀돼지의 또 다른 매력은 뒷고기다. 한 마리에서 소량만 나오는 특수부위 특유의 쫄깃함은 돼지고기의 또 다른 맛을 보여준다. 이 집에는 메뉴판에 적혀 있지 않은 정()도 있다. 주인장은 선지해장국을 아낌없이 리필해 주고, 고소하게 구워낸 돼지껍데기 역시 넉넉하게 내놓는다.

식사의 마무리는 멸치국수와 차돌된장밥이다. 구수한 국물과 된장의 풍미는 입안 가득 남아 있는 고기 향을 말끔하게 정리하며 한 끼 식사를 완성한다.

무엇보다 꿀돼지는 어려운 상권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와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주인 부부는 단순히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먼저 생각하고,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을 담아 음식을 내어놓는다. 그래서 이 집의 음식에는 고기 맛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인의 마음이 스며 있다. 어쩌면 단골들이 이 집을 찾는 이유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노원의 인구는 줄어들고 상권도 예전 같지 않다. 빈 점포 곳곳에 붙은 '임대'라는 두 글자가 그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단골들이 진짜 걱정하는 것은 빈 점포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세월의 맛을 만들어 온 가게들이 어느 날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일이다. 한 번 사라진 맛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주인 부부의 손맛과 단골들의 추억, 그리고 동네의 역사가 함께 담긴 맛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그래서 단골들은 오늘도 꿀돼지의 불빛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백년의 맛을 만들어가는 집. 그 집이 사라질까 봐 단골들의 혀끝은 조용히 두려워하고 있다. 맛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다. 젊었던 시절의 추억을 잃는 것이고, 동네의 역사를 잃는 것이며, 사람의 정을 잃는 일이다. 오늘도 상계역 골목 한편에서 꿀돼지는 묵묵히 불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불빛은 여전히 노원의 시간을 지켜내고 있다.

부두완 아시아투데이 방송Ai방송콘텐츠업국장

노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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