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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펫클립 신화 ‘글로리펫’ 서성계 대표

원사부터 완성품까지 독자 개발, 특허 출원

기사입력 2025-08-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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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펫클립 신화 글로리펫서성계 대표

원사부터 완성품까지 독자 개발, 특허 출원

애견인구의 증가로 애견미용사도 각광 받는 직업으로 부상했다. 이에 종사하려면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생견으로 가위질 연습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제품이 펫클립(털강아지 모양)이다. 펫클립은 견체에 씌워 빗질 연습부터 미용기술까지 터득해 나가기 때문에 애견 미용의 필수품이다.

펫클립을 원사부터 완성품까지 독자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한 뒤 국내 판매는 물론 메이드 인 코리아를 달고 해외까지 보내는 글로리펫(대표 서성계)’이 노원에 있다. 현재 상계2동주민센터 인근에 봉제공장과 경기도 양주에 물류센터를 운영 중이다. 글로리펫이 취급하는 품목은 연습생들이 쓰는 펫클립과 전문가용 쇼클립과 견체 등이다.

처음 가는 길이 그렇듯 시작이 쉽진 않았다. 서성계 대표는 먼저 지방 원사업체에 가서 털모양의 원사를 개발했다. 재질은 폴리프로필렌(PP)으로 빗질하면 개털처럼 서는 실을 만드는 게 노하우다. 개발 성공 후 원단으로 재직한 뒤 서울 공장에 가져와 재단하는데, 마름질용 옷본이 없어서 난관에 봉착했다. 이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어 스스로 양철판을 10번도 넘게 자르는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냈다.

연매출 10억원의 성공신화를 쓰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주력사업이던 원단 유통업은 IMF 때 대박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때 번 돈으로 원단에 투자했다. 그래서 중국을 자주 들락거렸다. 국내 유통은 직원에게 맡겼는데, 10여 년 전 어느 날 창고가 비어있었다. 사람을 너무 믿은 게 화근이었다. 결국 70억 부도를 맞았다.”

이때 서성계 대표는 추락할 땐 바닥이 없다는 것을 경험했다.

술로 살았다.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아내가 알바해서 겨우 살았다. 친한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었다. 땅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위험한 생각도 했었다.”

바닥을 치고 일어난 힘은 의지와 신용에 있었다.

부도나고 힘들었어도 나는 신용을 잃지 않았다. 아이디어를 내서 이 일을 시작할 당시 한 푼도 없었다. 원단 업계끼리는 서로 통해서 서사장은 믿어도 된다.’는 말이 오갔다. 그래서 원단을 외상으로 개발하고 벌어서 갚을 수 있었다.”
 

처음엔 6평 공간에서 3명이 시작해, 지금은 70평 공장에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15명이 서성계 대표가 만들어 준 두툼한 방석에 앉아 재봉질하고 마름질도 한다. 상품 특허도 출원해서 남이 따라 하기 힘든 고유영역을 구축했다.

처음엔 한 줄 몰라서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후회했다. 재봉틀도 직접 개조해야만 했다. 천을 뒤집어 털을 안으로 넣고 박는 게 무척 까다롭다. 재봉질 과정에서 긴 털이 바늘땀에 물려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빗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분업이었다. 직원들 각자가 몸통, 다리, 꼬리, 귀 등 맡은 부위만 만든다. 이제 전문가들이 다 됐다. 2년 전에 하청을 줬더니 한 번에 8천 개가 불량이 났다. 아까워서 뜯어서 다시 하는데 힘들었다. 작업이 어려운 탓에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직원들과 자주 야근한다.”

서성계 대표의 꿈은 해외 진출, 베트남에 공장을 세우는 일이다. 지금도 외국에서 카톡, 틱톡 등으로 문의와 주문이 들어오면 핸드폰으로 번역해서 답을 하고 있다. 애견미용협회가 주최하는 미용대회에 내빈으로 참가하고, 애견미용협회를 따라 해외 방문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먹고살 만해지면 동남아에서도 애견인구가 늘어날 것이다. 애견 산업도 성장할 것으로 본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노원신문 김명화 기자 mhyb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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