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6-24 12:36

  • 뉴스
  • 관광여행

관광여행

  • 뉴스 > 관광여행

백제 수도 부여 - 김재창의 팔도유람 산 이야기

낙화암 아래 백마강은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기사입력 2025-07-19 00:28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0

지리선생님 김재창람 산 이야기

백제 수도 부여

낙화암 아래 백마강은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부여는 백제 26대 성왕부터 31대 의자왕까지 6명의 왕이 123년간 통치한 백제의 수도였다. 부여는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인데, 신라의 수도 경주와 비교해 봤을 때 빈약하다. 하지만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부여 왕릉원, 정림사지, 부여나성(扶餘羅城)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관광도시로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여정은 서동공원의 연꽃, 궁남지, 부여박물관, 정림사지, 부소산성이다.

노원역을 출발한 버스는 2시간여 달려 서동공원에 도착하였다. 서동공원에서 매년 열리는 연꽃 축제는 우리나라 여름 대표 축제이다. 연꽃은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절에 가서 불상을 보면 그 대좌가 연꽃 모양이다. 연근은 먹고, 연잎에 싸서 밥을 먹기도 한다.

공원에 들어서자 연꽃이 만발하여 방긋 웃고 있었다. 연밭이 무척이나 넓었고 분홍색, 흰색, 노란색 등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을 피웠다. 방문객들은 다른 곳보다 여기가 제일 아름답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였다. 연꽃뿐만 아니라 수련 등 다양한 꽃들도 화창하다. 

백제시대 궁궐 남쪽에 만들어 궁남지(宮南池)라고 불리는 연못이 나타났다. 연못 한가운데 섬을 만들고 정자를 세워 운치가 있었다. 다리를 건너 연못의 섬으로 들어가는데 마치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이다. 백제인은 일본에 건너가 백제의 정원 조경기술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부여박물관. 백제 최고의 걸작품인 백제금동대향로부터 찾았다. 진품이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부여읍 능산리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한 향로이다. 높이 64,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가 모두 뛰어나 국보로 지정되었다. 박물관 전시실 중앙에 배치하여 눈에 잘 띄게 하였다.

대향로는 용, 봉황, 악사, 나무, 폭포, 동물 등이 각각 표현되어 있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었다. 신비로운 모습에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른 유물들은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보고 정림사지로 출발했다.

정림사지(定林寺址)에는 국보인 5층 석탑, 보물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 있다. 5층 석탑 앞에 서니 경외감이 생겼다. 석탑이 웅장하면서 아름답고 안정감이 있었다. 1층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고 세운 기념탑이란 글씨를 새겨놓았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한쪽에는 석조여래좌상이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많이 마멸되고 파괴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식사 후 부소산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부소산성 안에는 낙화암, 백화정, 고란사 등 유적이 많다. 부소산성 남쪽은 관북리 유적인데, 백제 수도 사비(부여)의 주요 왕궁 시설 건물터이다. 그러나 아직 왕궁의 정확한 위치와 전체적인 범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관북리 유적에는 주춧돌과 푸른 잔디만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백마강은 금강의 부여 구간 명칭이고, 낙화암(落花岩)은 백제의 3천 궁녀가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바위이다. 절벽에는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전하는 낙화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백화정 정자가 있고, 백마강은 그날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낙화암과 백마강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남겼다.

네이버밴드 명산300도전 산이야기

https://band.us/band/92912589

김재창 010-2070-8405

 

 

87 (100-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