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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록 시니어의 마을일기 - 텅 비어버린 창동차량기지

기사입력 2026-08-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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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록 시니어의 마을일기

주민자치회와 구청장이 그리는 새로운 노원

뙤약볕을 뚫고 온 인파로 통로에 의자를 놓고 계단까지 앉아야 할 만큼 구청 강당이 꽉 찼습니다. 18년 마을기획단으로 시작된 노원구 주민자치회는 10월부터 발효될 전국 주민자치회법의 기초가 되어온 만큼 구청장과의 대화에 회원들의 관심과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그것은 베드타운으로 인식되어 온 노원구의 현실에 신임 구청장에게 거는 기대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65만에 이르던 노원구가 48만까지 줄어들게 된 것은 인구가 감소하는 탓도 있지만 노후 아파트가 많고, 일자리와 교통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큰 원인입니다. 주민들은 남양주, 진접, 별내 등지의 새 아파트 단지로 떠나고, 노원에는 1인 가구와 이주민들이 남게 되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업을 유치하여 일자리를 만들고 교통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노원을 살리는 길입니다.

노원은 창동 차량기지 이전과 면허시험장 부지 개발」 「광운대역세권에 현대산업개발 본사 유치, 한전 인재개발원에 연구단지 구축 등 3대 심장을 거점으로 800개의 기업을 유치하고 여기에 핏줄이 될 신속한 교통망을 제공할 것입니다. 27년에는 동북선 경전철이 완공되고, 광운대역세권은 GTX-C 노선이 지나고, 동부간선도로는 지하화됩니다. 그러면 강남까지 10~20분 안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재개발과 재건축이 자연스럽게 탄력을 받아 노후 된 주택가는 새로운 아파트단지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강남은 주거환경만이 아니라 모든 거래처가 집중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강남, 강남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강남을 능가할 수 없지만 이상의 사업들이 다 되면 그들이 노원으로 오게 되는 유인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인천공항과의 신속한 접근성입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무역과 해외관광이 급격하게 팽창한 시대에 우리 노원구도 그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복지, 환경, 교육(김성환 구청장)」 「힐링 문화도시(오승록 구청장)를 이어 경제혁신, 명품주거, 교통중심, 창의교육, 포용복지, 그리고 힐링 문화도시를 일관되게 이어가겠습니다. 6,500개 이상의 어르신 일자리를 확보하고 주민제안사업도 95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탄소중립에도 지원을 확대하겠습니다.

서준오 구청장의 힘차고 명쾌한 비전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에 힘입어 탈북민이라고 손을 번쩍 든 주민은 노원구에 탈북민이 1000명이나 사는데, 이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경제적인 지원이나 취업의 문제보다 심리치유센터를 제안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없지 않았습니다. 탈북민들의 자살률이 4배나 높다고 합니다. 구청장도 이와 관련하여 은행사거리 학원가에 청소년 심리상담 센터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순, 강당이 술렁였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 동네 사건들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화재와 치안, 수방 등 도시안전에도 역량을 쏟아 주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불암산과 나비정원, 철쭉동산으로 가실 분들은 상계역에서 내리시라.”는 지하철 안내방송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중계4동 주민자치회원들이 박수를 쳐 주셨습니다. 구청장도 불암산역에 가보니 수락산이더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고 웃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문득 창밖의 창동기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 그런데 기지가 텅 비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남부유치선에 4~5개 편성이 있었는데, 북부유치선까지 텅텅 비었고, 세척고와 검수고도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모든 신호기는 꺼져있고, 기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관제타워도 썰렁했습니다. “언젠가는 가겠지! 가겠지!”한 것이 벌써 20여년이 되었는데, 실제로 문이 닫힌 기지를 보게 되니 이제는 어쩔 수 없구나.”싶었습니다.

30여년 지하철 인생이 영화처럼 지나갑니다. 불규칙한 교번근무와 열악한 조건 아래서 지옥철이나 파업철이라고 할 때는 억울해서 울컥하기도 했지만 시민의 발로 살아온 30여년의 지하철은 내 삶의 모든 것이 깃든 진실의 발자취입니다.

특히 정년퇴직 전 마지막 2년을 근무한 창동기지는 애틋합니다. 본선 운행을 마치고 입고하는 차량을 받아서 남부와 북부유치선에 다 유치하고, 끝으로 검수고까지 채우고 나면 새벽 3시가 넘습니다. 기지는 그때가 가장 바쁜데, 서두르다 보면 사고위험이 매우 많은 시간대입니다. 본선열차가 고장 나면 언제든지 비상출고 해야하기 때문에 기지는 24시간 대기입니다. 폭염과 폭우, 혹한과 해빙기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구내식당 밥은 싸고 좋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드넓은 기지 구내를 한 바퀴 도는 것은 나의 소중한 일과였습니다. 그렇지만 같이 밥을 먹던 후배들이 먼저 가는 일이 몇 번 있었고, 얼마 전에도 같이 근무하던 선배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창동기지로 입출고는 없습니다. 지금 4호선을 달리는 전동차도 새로 건설된 진접기지에서 출고한 열차들입니다. 예정보다 10여년이나 늦어진 진접기지는 창동기지와 똑같은 모양으로 건설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르막이 너무 가팔라 겨울에는 자력으로 입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퇴직 후 언제고 한 번 가보리라고 생각했던 창동기지가 이제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습니다. 우리의 청춘과 열정이 스며있는 창동기지가 이렇게 막을 내리는구나! 내가 안아주었던 나무들은 잘 있을까? 단풍 든 그 길을 또 걸어볼 수는 없겠지? 집에 돌아와 그때 찍은 사진과 영상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기록은 기억보다 생생합니다. 영상 속의 목소리는 더 애석하고 아련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폐쇄되기 전에 창동기지를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새로 건설된 진접기지도 가보고 싶습니다.

 

 

노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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