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록 시니어의 마을일기
전설 따라 에비오제, 그리고 국제시장
어릴 때‘에비오제’는 돈이 있는 집 아이들이나 먹는 영양제였습니다. 지금도 그 맛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처음은 달콤하고 나중은 씹을수록 고소합니다. 콩가루를 꿀에 재어 알약처럼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자식에게 그것을 사 먹일 수 있다는 어머니의 자부심은 대단하셨습니다. 형들에게 빼앗기기라도 할까봐 어머니는 끼니마다 나를 따로 불러 한 알씩만 주셨습니다. 꼭 모이를 먹으러 가는 닭처럼 나는 밥보다 에비오제를 먼저 찾았습니다.
“너, 에비오제 묵고 왔구나. 아 해봐!” 고소한 냄새가 풍기면 또래들은 눈총을 쏴댑니다. 그만큼 에비오제는 강력했는데, 아버지는 동네에서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부럽고 아니꼬워도 쪼그마한 나를 건드리지 못했던 까닭이 있었던 것입니다.
“늑 아부지가 광업소 다닝께 그것을 사 멕일 수가 있었제~에! 너는 3000개짜리, 영주는 2000개짜리, 숙경이는 1000개짜리 그랬제! 온 식구 살림을 합쳐놓고도 그 셋은 멕였는디, 그 뒤로는 못 멕이고 말았제.”
고생만 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짠하다고 어머니는 또 눈물바람이십니다. 나는 먹먹한 어머니의 눈물바람을 다 들어드립니다. 그 눈물에 어머니의 지난 세월이 조금이나마 녹여질 수 있으면 좋으시련만!
에비오제는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었는데, 우리는 플라스틱을 ‘뿔’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플라스틱은 고무신보다 조금 더 딱딱한 것들이었습니다. 고무냄새와 에비오제 내음이 뒤섞인 빈 통을 어머니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참깨나 들깨 또는 팥이나 녹두를 담은 ‘뿔통’을 키 높이대로 가지런히 건반처럼 늘어놓으십니다. 그 뿔통까지도 어머니에게는 은연중에 자부심이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공원에서 우연히 동네 사람들과 「어머니 마음(이흥렬 작곡, 양주동 작사)」을 몇 번이나 부르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생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노원수학문화관에서 영화 상영을 하는 날(6/26), 그날 영화가 ‘국제시장’이었습니다.
영화는 흥남철수로 시작해서 전쟁난민들이 살아가던 부산 피난지의 국제시장을 거쳐 우리가 살아온 시절까지 겹쳐집니다. 나는 영화처럼 그때 독일에 광부로 파견되었던 아버지의 친구 한 분을 기억합니다. 한 마을에 한 명씩만 선발되는 특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별수 없이 화순 탄광을 계속 다니셨습니다. 화순 탄광은 독일의 탄전보다 더 위험하고 위태로웠습니다. 아버지는 사고를 당하시고 진폐증으로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른 애들이 못 먹는 에비오제까지 먹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께 죄송스럽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절이라 그때 내가 먹은 에비오제도 국제시장을 통해 들어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영화에서처럼 난리 통에는 사람들이 살고 죽고 생사를 모른 채 헤어지는 일도 많았는데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우리의 60년대도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린 것들은 홍역을 이기지 못한 채 죽고 평균수명이 짧아 마흔이 넘으면 동네에서 어른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그때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세대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베이비부머’라고 통칭되는 나를 생각합니다. 대처로 나가 공돌이와 공순이였던 공원들은 세계에 우뚝 선 대기업과 대한민국을 일구는 되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 사회의 시니어 부머가 되었습니다.
어떤 영화는 전설을 일깨우고, 전설은 나를 비춰주는 맑은 거울이 되어줍니다. 나는 지난날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가만가만 또「어머니 은혜」를 불러봅니다. 까치소리에 아침이 밝아옵니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