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신문 1116호 사설
달리는 사람들의 앞길, 혹은 후일
혼자여도 좋고, 꽃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꽃길만 걷게 해 준다고 했다. 밤새 설레는 마음을 솔직히 말해보는 데이 브레이크의 10년 전 노래이다. 햇살 따뜻하고, 바람 살랑이며, 온천지에 꽃들이 만발하는 요즘에 딱 어울리는 노래이다.
3월 28일 중랑천에서 제1회 쓰레기 없는 느린 달리기 대회가 열렸다. 함께걸음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노원어르신휴센터가 마련한 이날 대회는 17개월 영아부터 90세 노인까지 함께 3~10km를 달렸다. 기록도 순위도 가리지 않으니, 누구도 숨 가쁘지 않았다. 그저 봄볕에 찰랑이는 물소리를 느끼며 제 길을 가면 되었다.
출산 몸조리를 마치고 처음 달려보는 엄마도, 고3 수험생을 키우며 답답했던 엄마도, 당뇨 전단계 딸과 함께 손잡고 나온 엄마도, 심장 수술 후 재활 운동을 위해 나온 엄마도 즐거웠다. 연말 결혼을 앞둔 청춘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는데, 이제는 서로 속도를 맞추는 연습을 하려고 참가했다. 3대가 함께 참가해 가족의 추억을 만들고, 경로당 동료들이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중증장애인 자조모임 아띠는 네발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함께 달렸다.
제1회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1년에 한 번이 될지 두 번이 될지 모르지만, 묵동천 야외공연장은 이제부터 함께 걷거나 달리기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4월 1일에는 노원초등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달고 중랑천을 걸었다. 3·1 만세운동의 의미를 새기며 딱 3.1km를 걸었다. 이 학생들의 걸음이 신나고 즐거웠던 만큼 한민족, 대한민국의 앞날도 꽃길처럼 펼쳐질 것이다.
그 길에는 누구 하나 뺄 이유가 없다. 다운복지관은 이번 주말에 공릉동근린공원에서 다운증후군의 날을 기념해 장애인, 비장애인 함께하는 걷기대회를 진행한다. 경춘선숲길을 따라 경춘스테이션까지 갔다 돌아오는 길이다. 2부에는 축하공연도 준비했다. 함께 천천히 추억을 만들면 된다.
39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무에서 내려온 유인원은 200만년이 지나서야 등을 완전히 펴고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었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직립해서 걷는 사람들이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돌을 깨 석기를 만들고, 불을 피웠다. 덕분에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지면서 말로 서로 소통했다.
이제 인류는 소나 말이 없어도 기술의 진보로 화석에너지원을 사용하여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를 타고 더 멀리 더 빨리 갈 수 있게 되었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성실함이 인류를 더 진화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곳곳에 흙길이 마련되고,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어씽(Earthing)족이다. 자연과 호흡하고 교감하며 이 땅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 몸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수락산, 마들의 정기는 발바닥으로 들어와 눈빛으로, 말투로, 손의 온기로 발현된다.
걷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혼자여도 좋고, 꽃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 길 앞에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