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록 시니어의 동네일기
백사마을 발굴하기(260123)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면서 선거 때마다 재개발 공약이 나오곤 했던 중계동 백사마을이 철거에 들어갔습니다. 텃밭과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막만한 집들이 50년 만에 밑바닥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이전부터 그 동네를 자주 찾아갔었습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나만의 포토존에 서면 남산과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을 잇는 서울의 저녁이 고즈넉했습니다. 그 앞집은 어떤 화가가 살고 있었는데, 눈 쌓인 아침은 속까지 시렸습니다. 아파트로 꽉 찬 서울에서 눈에 파묻혀 연탄으로 가까스로 온기를 부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유명한 연예인들과 ‘쉿’ 검지를 입술에 댄 그림을 걸기도 했습니다. 정숙하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통했지만 그 화가를 본 적은 없습니다.
여기저기 빈 집들이 생겼습니다. 다 허물어져 가는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원두막 같은 초막에 앉으면 동네 사랑방입니다. 빨랫줄처럼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서 노인들은 전설 같은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할머니의 자장가 같기도 하고 21세기의 한적한 일상이기도 했습니다. 언덕을 내려오면 깨진 유리창으로 들여다보이는 미용실이 있고, 문 닫은 비디오 가게가 있고, 뉴스에도 나왔던 경로목욕탕이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문을 연 점방과 페인트가게, 피아노학원과 작은 어린이집, 그리고 설비업체들도 이제는 철거되었습니다. 아침마다 길거리를 쓸어주던 어르신도 지금은 안 계십니다. 그런데 참외도 주시고 미나리도 뜯어가라고 하던 그분은 이사 갔지만 지금도 비닐하우스를 손보십니다. 좁고 긴 하천부지는 개발구역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철거되는 백사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인부 500명을 대체한다는 포크레인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하는 은행나무도 전기톱에 나가고, 해마다 알밤을 떨어뜨려 주던 왕밤나무도 밑동이 잘렸습니다. 철거한 것들을 다 실어내자 원래 지형이 드러났습니다. 자주 섰던 포토존은 포크레인 발자국이 두 줄로 깊게 찍혔습니다.
백사마을은 발굴이 끝난 유적처럼 숨결이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을 것입니다. 돈으로 그은 직선의 개발 사업은 추억이나 인정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벌써 딱지에 1억이 붙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이주가 완료되고 철거된 마당에 이제는 「따뜻한 겨울나기」의 손길들도 더는 없습니다.
“다 실어내고 이것 남았어요.” “터파기는 언제 하나요?” “그것은 나도 모르죠!” 안전모를 쓴 기사와 몇 마디 했습니다.
재개발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가게들은 서둘러 「함바집」으로 바뀌었습니다. 붉고 흰 깃발을 나부끼던 몇몇 도사님들과 “세상이 멸해도 내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개척교회도 간판만 남았습니다. 떠날 사람들은 떠났습니다. 종점에는 버스기사들이 커피를 들고 출발시간을 재고 있습니다. 언제 또 이 동네를 찾아올 수 있을까! 떠난 사람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도 없겠지! 그런데 언제쯤이나 되어야 사람들이 다시 올까?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