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선생님 김재창의 팔도유람
계족산 황톳길, 계룡산 동학사와 갑사
대전은 남한의 중앙에 있으며, 철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흔한 시골 지역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서울, 부산, 인천, 대구에 이어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조선 초기에는 ‘한밭’으로 불렸으나, 한자로 바꾸어 ‘대전(大田)’이 되었다.
공주는 백제의 옛 수도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풍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이다. 공주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시골이었던 대전에 밀렸다. 근대 시기 철도와 도로(자동차) 교통의 발전으로 강을 통한 수운이 사라지면서 공주시가 가진 교통상 이점이 사라졌다.
이번 여정은 대전 계족산 황톳길 맨발걷기와 공주의 동학사, 갑사 관광이다.
노원역을 출발한 관광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계족산 황톳길에 도착하였다. 계족산 황톳길은 2006년 임도(林道) 총 14.5㎞에 황토(黃土)로 조성한 맨발 트래킹 명소이다. 해발 420m에 위치한 계족산성은 삼국시대의 성벽으로 현재는 계족산의 대표 전망대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신발장과 발 씻는 곳이 눈에 띄었다. 계족산 황톳길은 임도의 한쪽에 황토로 만든 길이다. 붉은 황톳길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맨발로 부드러운 황토를 밟으며 걸으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유실되는 황토를 유지하기 위해 전북 김제·익산에서 질 좋은 황토를 가져와 깐다고 한다.
좀 더 가니 황톳길을 만든 사람 사진이 붙어 있었다. 충청권 소주 회사 회장이었다. 본인은 “병 주고 약 주는 사람”이라고 농담을 한다. 많은 돈을 들여 만들었고 매년 유지·보수비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중간에 소주회사 광고판이 있었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도 발에 부담이 안 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계족산성 700m’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다시 신발을 신고 산을 올랐다. 백제의 옹산성(甕山城)으로 추정되는 계족산성은 계족산 정상부에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 부분은 350m에 달하고 있다. 정상에 오르니 산성은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방은 확 트여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대전과 대청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계족산을 뒤로하고 시내로 식사하러 갔다. 일부 회원은 반주로 황톳길을 만든 회사의 소주를 한잔하였다.
다음 행선지는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유명한 동학사(東鶴寺)이다. 동학이라는 이름은 절 동쪽의 학 모양 바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가는 도중 홍살문을 만났다. 보통 사찰에는 없는데 아마도 사당이 있어서 그런 듯하다. 일주문이 나타나고 가는 도중에 규모가 큰 암자가 많이 눈에 띄었다. 일반적으로 암자가 산 높은 곳에 있는데 낮은 곳에 있어 궁금하였다. 한 암자에는 여승이 보였다.
동학사에 도달하자 바로 옆에는 동학삼사(東鶴三祠)라는 유교 사당이 있었다. 마치 동학사에 딸려 있는 암자같이 보였다. 동학사는 6.25 전쟁 때 옛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져서 그런지 보물이 하나도 없어 아쉬웠다.
다음은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있는 갑사(甲寺)로 출발하였다. 갑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간다(甲)고 해서 갑사가 되었다고 전한다. 예로부터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자랑하는 사찰이다. 문화재로는 국보 1점, 보물 5점이 있다.
보물인 철당간과 승탑부터 찾았다. 대웅전에서 떨어져 있어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갑사 철당간이 남아있는 주된 이유는 나무가 아니라 철(금속)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전국에 3기의 철당간이 남아 있다. 바로 가까이 승탑(僧塔)이 있었다. 승탑은 고승의 사리를 담은 작은 탑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섬세하고도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김재창 ☎010-2070-8405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