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6-24 12:36

  • 오피니언 > 사설

우리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는 말과 글

한글의 값어치를 빛내는 말살이

기사입력 2025-10-12 16:08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0

노원신문 1096호 사설

우리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는 말과 글

한글의 값어치를 빛내는 말살이

열흘 가까이 이어졌던 꿀맛 같은 한가위 쉬는 날의 마지막은 한글날이었다. 한글을 쓰고 읽으면서 온 누리의 돌아가는 까닭과 바른길을 알아내고, 서로서로 마음을 통하며 뜻을 이어 온 우리 겨레에게는 하늘을 열어 나라를 세운 날이나 빼앗긴 겨레의 빛을 되찾은 날만큼이나 값진 날이다. 글을 쓰고 읽기를 나의 일로 삼은 이라면 더욱 벅차오르는 날이다.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그리하여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이 쉬이 익혀 날로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글자를 만들었다(世宗御制 訓民正音).

한글은 사람의 울대 모양을 낱낱이 살펴보고, 말소리가 만들어지는 차례를 따지고 살펴서 만든 딱 들어맞는 글자라 우리 겨레의 소리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들리는 온갖 소리를 다 보일 수 있다. 고소하다와 구수하다와 같이 소리의 작은 차이도 다르게 쓸 수 있으니 뜻이 나눠지고, 그만큼 많은 것을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하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 겨레의 삶꽃을 다른 나라 사람들도 좋아하고 같이 즐기면서 한글도 같이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말은 아무 탈 없이 튼튼한가? 글쓰기를 일로 삼아 여러 해 거듭하고 있지만 이 짧은 글을 쓰는데도 내 생각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한자나 미국 낱말로 썼다면 더 바르게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금 우리 말이 겪고 있는 자리이다.

가족(家族)과 함께 행복(幸福)한 중추절(仲秋節) 보내세요.”

지난 추석 연휴에 길가에 걸린 현수막 사진 한 장으로 인터넷소통창(SNS)에는 친중(親中) 논란이 벌어졌다. 이제 우리는 안 쓰는 중추절이라는 표기가 시빗거리였다.

온대몬순기후(Cwa)의 아시아 문화권에서 추수 시기인 팔월 보름은 서구의 페스티벌(Festival)이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과 같은 큰 명절이다. 하지만 나라마다 다른 기원이 있고, 그 풍토(風土)에 맞게 정착되어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중화권에서는 중추절이지만 우리는 가배에서 유래하여 한가위로 부르다가 이제 추석(秋夕)으로 정착되고 있다. 그러나 글 하나를 꼬투리 삼아 자기의 생각을 드러냈거나 헐뜯기에 나선 것이다. 명절인데도 마음껏 즐기지 못할 정도로 삐뚤어진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우리는 마음에도 없이 말로만 안녕(安寧)’이라고 인사하지 않았다. 이웃을 만나면 먼저 밥 먹었느냐?”“어디 가세요?”하며 반가운 소리를 했다. 아이들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라면서 다 아는 말, 쉬운 우리말을 쓰는데, 배움이 많은 요즘은 우리말을 쓰기가 더 어렵게 되었다.

우리말을 살려내고, 한자말을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우리말을 우리말로 풀이한  『푸른 배달말집을 쓰고 엮은 최한실님은 종살이 때도 백성말로 굳어지지 않았는데, 나라를 되찾고 여든 해 동안 왜말에서 건너온 것을 책에 실어서 배워서 그런 것이라고 따끔하게 짚었다. 한내가 그렇게 중랑천(中浪川)이 되었다. 잘못 가르치고 배운 말들로 우리 생각과 삶도 꼬이고 뒤집힌 것이다. 한글로 쓰지만 우리 말이 아니다. 그건 인도네시아 찌아찌아 부족과 다를 바 없다. 글 쓰는 이들은 이를 더욱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96 (100-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