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선생님 김재창의 팔도유람 산 이야기
공주시 시간여행
무령왕릉에서 백제문화를 다시 느끼다
찬란한 백제 번영의 도시, 공주(公州) 답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문화유산 3곳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옛 송산리 고분군), 마곡사이다.
공주는 475년부터 538년까지 백제의 수도였다. 백제 시대에는 웅진(熊津), 통일신라 시대에는 웅주(熊州), 고려 시대 이후에는 공주로 불렀다. 백제시대 서해에서 금강을 따라 배가 드나들던 곰나루(고마나루) 나루터가 있다. 이곳은 인간세상을 동경한 곰 여인의 전설이 어린 곳이다. 공주의 마스코트는 곰이다.
‘산이야기’ 여행은 노원역, 사당역, 양재역, 동천역을 거쳐 간다. 공주에 들어서면서 정안알밤휴게소가 나타났다. 공주시 정안면은 전국에서도 유명한 밤 산지이다. 전국 밤 생산량의 7%를 생산하고, 국내에서 개발한 품종을 재배해 수익에 큰 보탬이 된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백제의 도성인 공산성(웅진성)이다. 정문 앞 도로 한가운데에 커다란 황금색 무령왕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성내로 들어가 언덕을 오르니 공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철교가 멋지게 보였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만든 금강철교는 버스는 못 다니고 승용차만 허용이 된다.
성곽을 따라 오르막 내리막을 걸었다. 공산성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60m로 지형에 따라 토성과 석성으로 축조되었다. 한참 내려가니 평탄한 왕궁지가 나타났다. 왕궁과 관련된 다양한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옻칠갑옷과 말갑옷, 장식칼, 목기, 쌀, 조개 등 백제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도중에 예기치 않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관람을 포기하고 버스에 올라 전통시장을 찾았다. 공주시 인구가 10만명인데 시장 규모가 상당히 컸다. 시장 한켠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어 보니 ‘400년 인절미 안내판’과 떡치는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1624년 이괄이 난을 일으켜 인조임금이 공주로 몽진하였을 때 임씨 집에서 떡을 진상하였다. 이에 인조는 “임씨가 만든 떡인데 절미로구나.” 하여 임절미가 되었고, 후에 인절미로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식사하고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향했다. 무령왕릉과 1~6호분까지 총 7기가 복원되어 있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이다. 왕과 왕비의 목재관이 일본에서 자생하는 금송(金松)으로 만들어 일본과 빈번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왕릉에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아 52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 유물 전시관에서 왕과 왕비의 금제관장식, 돌로 만든 동물인 석수가 인상적으로 보였다. 모형으로 만든 무령왕릉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상당히 넓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실제 무령왕릉으로 가봤다. 신라무덤보다는 작았고, 다른 왕릉과 가까이 모여 있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마곡사이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 대사찰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젊은 시절 한때 머문 적도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이 7점이 있고, 최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마곡사 5층 석탑이 있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秋甲寺',‘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라는 말이 있다. 마곡사는 봄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경내로 들어서니 수형이 멋있는 벚나무 꽃이 활짝 피어 환상적이었다. 역시 춘마곡이다. 5층 석탑은 ‘탑 위에 탑’을 쌓은 매우 특수한 양식이어서 경이롭게 보였다. 중국 원나라 등에서 유행했던 라마식 불탑 양식을 재현했다. 대웅보전은 외관상으로 2층 건물 형태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어서 남달랐다. 마곡사에 왕이 나올만한 명당인 군왕대(君王垈)가 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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