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소개합니다-노원중앙도서관 사서 정상훈
[허송세월] 김훈. 나남. 2024
▶김훈은 유명한 소설가이고, 수필가이며, 문학평론가다. 다른 노인들처럼 젊은이들의 행태가 못마땅한 노인이다.
‘승용차 유리창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고 써 붙여 놓았을 때, 이 아기는 누구네 집 아이인가, 이 아기는 승용차 주인의 아기이다. 다른 집 아기는 이 ‘아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문구의 속뜻은 ‘내 자식이 타고 있어요’라는 말이고, 결국 하려는 말은 ‘가까이 오지 말라’일 터이다.‘-246p
▶그는 애주가였으나, 이제는 병원 다니는 노인이다.
‘소주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 소망과 좌절을 멀리 밀쳐 내고 또 가까이 끌어당겨서 해소하고 증폭시키면서 모두 두통으로 바꾸어 놓는다. 소주는 생활의 배설구였고 종말처리장이었는데, 나 역시 거기에 정서를 의탁해서 힘든 날들을 견디어 왔다.’-15p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소독약 냄새 풍기는 젊은 의사는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더 젊은 간호사는 날 보고 ‘아버님’이란다. 나뿐 아니라 늙은이를 보면 닥치는 대로 ‘아버님’이다.
이런 호칭을 들으면 모욕감을 느끼지만, 아프니까 별수 없이 병원에 간다. 내가 젊은 간호사를 “딸아”하고 부르면 나를 미친 늙은이로 볼 것이다.‘-34p
▶김훈의 소설 대부분에는 상남자가 나온다. 고독하게 결단하고, 책임지는 상남자가 나온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 ‘하얼빈’의 안중근, ‘남한산성’의 최명길과 김상헌 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상남자가 나온다. 상남자 김훈은 밥솥을 끌어안고 울고, 다른 이의 밥그릇 때문에 화낸다.
‘이 식당들의 가격은 생존의 한계선이다. 식당들은 이 가격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한다. 식당 주인들도 음식을 사 먹는 사람들도 더 이상은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서, 노동을 팔아서 밥을 먹고 밥을 팔아서 밥을 먹는다.
물리적 강제력을 쓰지 않아도,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처지에 맞는 식당과 메뉴를 선택한다. 밥을 먹는 사람이 이처럼 알아서 기는 원리를 어려운 말로는 ‘시장의 자유’라고 하고, 가격이 시장에 질서를 부여하는 힘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한다. 이러한 얘기들은 경제학원론에 쓰여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은 가격의 기능을 ‘신의 섭리’쯤으로 모시고 있다.
명품 핸드백이나 고가 자동차를 사고파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은 자유와 조화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4천원이나 5천원짜리 밥을 먹는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몽둥이’이거나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다. -163p
▶김훈은 보수주의자다. 남의 밥그릇 걱정도 하는 자가 보수주의자다. 내 밥그릇 걱정만 하고, 심지어 ‘부정식품’ 타령하는 자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나쁜 놈이다. 아주 나쁜 놈이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