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계 중심적 한국 사회의 소통 단절
젊은이의 세상을 좀더 기다려 보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대기업 창업주의 삶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배우고 느끼며 성장하는 것이 이치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청년을 거쳐 어른이 되어간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 차단막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뛰어다니는 아이가 이쁘기보다는 성가시고 버릇없게 느끼는 어른들이 많아지니까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은 입장을 막는 ‘노키즈존’이 생겼다. ‘교양 있고 우아한 여성만 출입 가능’하다는 헬스장도 소문이 났고, 공중도덕 안 지키는 어른들이 불편하다고 ‘노실버존’도 생기고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일부 ‘진상 고객’이 문제이지만 장벽이 점점 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타인의 참견과 지적을 싫어하는 만큼 칭찬과 격려도 싫다고 한다. 아예 관심 자체를 꺼리는 것이다.
어떤 희극인은 ‘엠지(MZ)오피스’라는 프로그램에서 젊은 직장인의 모습을 “이걸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오르는 편입니다.”고 하는 대사와 상황으로 표현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 지금요? 제가요? 왜요?”는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캐릭터까지 만들었다.
여기저기 소통에 장애가 생긴다. 세상 거의 모든 일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주워들은 말로도 나서고 싶은 어른들과 도무지 풀리지 않는 갑갑한 세계가 불안한 젊은이가 한 공간에 산다.
자신들도 서른인 게 두려운데,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병아리 취급, 버르장머리 없는 엠지 취급하면서 빨리 결혼해서 애를 낳으라고 닦달한다. 그게 어른의 충고라고 생각한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우리 문화의 특징을‘관계-중심적’이라고 설명한다. 서구의 개인주의와 달리 개인보다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존재하고 규정되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개인보다는 '우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나만 잘되면 될까? 나만 잘하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나만 잘살면 고독사, 자살은 없어질까? 아직도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오지랖 넓은 자원봉사자들이 끊어진 세상을 이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 조건이 달라지면서 그 시대를 살아내는 방식도 달라진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개인의 존재가치는 더 커지는데, 어른들은 아직도 자라나는 젊은이의 세계에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는 형국이다. 젊은이들은 일방적으로 관심을 받는 피동적인 상태를 견딜 수 없으니 차단한다. 관계를 못 맺는 것이 아니라 안 맺는 청년이 늘고 있다. 관계의 단절은 인간성을 발현할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다.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배려와 존중이다. 부족한 것을 이해하고 손 내밀어야 한다. 걸음이 늦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임산부, 할아버지도 기다려야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젊은이도 기다려야 자신의 세상을 펼쳐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