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무대가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되는 상상
정정열 편집위원 ‘텃밭음악회’ 관람기
10월 19일, 토요일 오전 10시
대학시절 친구의 딸 결혼식이 있어 아침부터 아내와 분주하게 움직였다. 충무로에서 오전 11시 30에 야외결혼식이 열렸는데, 태양도 축하하듯 신랑과 신부가 생의 기념사진 찍기에 딱 알맞은 각도로만 비추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잔이 오갔다. 지난한 세월을 견뎌 온 친구도, 어깨에 ‘뽕’ 좀 넣은 듯한 친구도 모여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철없는(?) 인간의 군상이 되어 자연히 술잔은 빨라지고, 2차 장소로 옮겨 남은 추억들도 다 소환하며 몸이 휘청거리도록 추억에 젖었다. 3차로 “커피 마시러 가자!”에 자리를 일어서는데, 내 아내가 말했다. “당신 5시에 약속 있잖아요.”
10월 19일, 토요일 오후 5시.
아쉬움은 내 트렌치코트에 다 담고, 전철로 상계역에 내렸다. 이미 오후 5시를 향하고 있어 부지런히 택시를 잡았다.
“아저씨, 천수답 갑시다.”
“천수답요? 그게 어디죠?”
“중계동 노원문화예술회관 지나서 산 쪽으로 가다 보면 마지막에 커피숍 있고, 그 안쪽으로 텃밭농장 있잖아요?”
“아, 천수텃밭요.”
목적지의 이름조차 제대로 말 못하는 나를 보며 기가 막혔을 아내가 부연 설명을 해서 어찌어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얼큰한 상태인지라 택시기사님께 “아저씨 천수답이나, 천수텃밭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요?” 술에 몸을 반쯤은 맡겨버린 내 발음이야 온전했겠는가? 기사님은 ‘그렇긴 하네요.’ 정도로 넘어간다.
그렇게 택시에서 내려 천수텃밭 정문으로 들어서니 이벤트가 있다던 그곳엔 생각과는 달리 너무 조용했다. (사실, 붓글씨 쓰는 지인이 초청해서 가게 된 것임.)
한가로이 텃밭을 가꾸는 분들이 몇 분 계셔 물으니, 산 쪽으로 쭈~욱 올라가란다. 예식장에 가기 위해 흉하지 않게 차려입은 우린 그 복장으로 텃밭길을 오른다.
혹시 몰라 내 손을 꼭 잡은 아내는 “어디야, 아디야?”를 아기 묻듯 물으며, 텃밭 사이사이를 오르며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멋진 이벤트만 볼 것”이라 한 나를 못 믿는 눈치다. 아내는 그런다. “당신, 오늘, 날 놀래주려고 납치하는 거구나!”
드디어 도착한 ‘텃밭 야외무대’. 그렇다. 우리 앞에 펼쳐진 야외무대는 규모는 작아도 ‘아, 사람들이 정말 즐기고 있네.’라는 흥분을 전해주기엔 충분했다.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파전에, 묵에 여러 안주를 받았다. 술은 값을 치러야 했다. 막걸리 3병을 사서(사실, 술에 이미 젖은 내가 3병을 소화할지는 자신 없었지만) 돗자리에 앉았다.
누구나 한 번은 본 듯한 익숙한 분위기를 느끼며 바로 옆 사람이 마치 오래 본 듯한 사람처럼 대화가 오갔다. ‘한잔 하시죠.’ 하면 바로 친구가 됐다. 사자머리(?)한 사회자의 능숙한 달변도 있었지만, 자연이라는 분위기, 내가 찾아온 곳이 텃밭길을 지나 숲속에서 발견한 궁전이라는 것, 거기에 주로 우리 노원 출신들의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은 함께하기엔 딱 맞는 분위기였다. 출연자를 따라 익숙한 노래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 어느 정치인의 ‘돈타령’도 이제 귀에 익어 버린 것처럼 웃음이 절로 나왔다. 숲속 무대는 여느 공연홀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아내는 막걸리를 같이 마시며 마냥 즐거워했다. 내모처럼 신랑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스탄불의 지하저수조인 ‘예레바탄 사라이’가 지하궁전이 되어 유명세를 타듯, 텃밭무대가 시민들이 모여 즐기고, 사람 사는 미래를 만드는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