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혐오시대의 무해력
행복하기 위해 누굴 희생시키지 마
세상에 저 홀로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깊은 산속이라도 볕이 들고, 물도, 바람도 있어야 한다. 저 하늘의 달도 지구의 밤을 지키기 위해 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달이 없으면 태양의 존재도 흔들린다. 세상은 그렇게 관계를 맺으며 공존, 공생한다.
고령화보다 더 무서운 ‘인구절벽’이다. 어릴 적 유럽동화에서나 읽었던‘낯모르는 먼 친척이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곧 현실이 될 판이다. 이모, 고모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사랑받을 아이가 없다. 아이를 낳을 부부가 없다. 대신 개와 고양이가 유모차를 타고 산책길에서 애교를 부린다. 영리한 ‘호모 사피엔스’가 무거운 책임은 회피하고 가벼운 쾌락만을 선택한 것이다. 생명을 창조하는 것만큼은 암수의 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세상은 지금 대혐오의 시대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꼰대’들의 전통일 뿐이다. 인터넷 매체가 늘어날수록 혐오의 목소리는 넘쳐나고, 다툼은 잦아진다. 더구나 나눌 것이 많지 않은 경쟁 속에서는 수단을 가릴 여유가 없다.
대혐오의 시대는 잘 나가는 사람을 끄집어 내려 나락으로 보내는 것만큼 대중들을 흥분시킬 것이 없다. 흔한 실수조차 악의 프레임을 씌우고 물고 뜯고 싸운다. 본인의 행동거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행동은 가정하여 조롱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온통 혐오만 유포된다. 그게 돈이 되는 세상이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상처받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것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생태학자 최재천 박사는 ‘호모 신비우스(Homo Symbious)’즉 자연과 함께 공생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상을 제안한다. 인간의 지혜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데 쓰일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소비트랜드를 연구하는 김난도 박사팀은 ‘무해력(無害力)’을 아기판다 푸바오 열풍을 예로 들면서 ‘단순히 약한 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적이거나 자극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은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도 자신만의 신념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소비자들이 환경과 사회적 책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무해력은 지속 가능한 소비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 역시 무해한 방식으로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남 이야기 말고 오늘 저녁 밥상부터 차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