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선생님 김재창의 팔도유람 산 이야기
연천 고대산 역고드름, 철원 백마고지
전쟁의 상처와 자연의 치유력
서울의 북쪽인 연천과 철원을 탐방하였다. 서울에서 가깝고 특히 차가 막히지 않아 좋았다. 승용차로 동료와 같이 아침 늦게 출발하였다.
동두천, 전곡읍, 연천읍을 지나면서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신서면에 들어서자 아담한 기차역인 신탄리역이 나타났다. 지난 60여 년간 경원선(서울~원산)의 마지막 역으로 철도가 중단된 곳이다. 지금은 백마고지역, 월정리역으로 연장되었다. 신탄리(新炭里)는 예전에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 자원을 숯으로 가공하여 생계를 유지했던 마을이다. 현재는 대광2리 지역에 해당한다.
언덕을 넘으니 역고드름 이정표가 보였다. 역고드름은 마치 땅에서 고드름이 솟아오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고드름이 알려진 곳은 연천 경원선 폐터널과 진안 마이산 탑사(塔寺)가 있다. 연천은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이 조금씩 얼어붙어 만들어졌고 진안은 그릇의 물이 자연현상에 의해 하늘로 솟아오른 것이다. 진안의 역고드름은 신기한 자연현상으로 이해가 잘 안된다.
좁은 시골길을 따라 터널에 도착하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패망으로 공사가 중단되어 길이 100m, 폭 10m의 터널이 남겨졌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탄약 창고로 쓰면서 미군의 폭격으로 터널 위쪽에 생긴 틈으로 물이 스며들어 역고드름이 만들어진다. 12월 중순부터 자라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볼 수 있다. 겨울이 아니어서 역고드름을 볼 수 없어 너무나 아쉬웠다. 추울 때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백마고지로 향했다.
조금 가니 경기도 연천군에서 강원도 철원군으로 지명이 바뀐다는 경계 표지판이 보였다. 약 6km를 달리니 백마고지 전투에서 이름을 따온 백마고지역이 허허벌판에 우뚝 서 있었다. 현재는 기차 운행이 중단되어 쓸쓸하게 보였다.
백마고지 전적지는 '백마고지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전사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입구에는 커다란 백마 조형물이 힘찬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언덕을 오르는데 좌우에 태극기가 수없이 걸려있고 주변에는 하얀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기념관에는 6.25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녹슨 무기류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한국전쟁의 참상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언덕을 오르니 오대쌀로 유명한 천혜의 무공해 청정지역 철원평야가 드넓게 펼쳐졌다. 평야 한쪽에 해발 395m의 백마고지(白馬高地)가 눈앞에 나타났다. 백마고지 초소에는 태극기와 UN기가 동시에 걸려있었다. 백마고지는 민통선 안에 있어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고 이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
6·25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하였으므로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열흘간 24차례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혈전을 치른 끝에 국군이 중공군을 격퇴하고 승리하였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 전투의 승리로 이끈 주력부대는 백마부대로 불리게 되었다.
백마고지는 '철의 삼각지대(철원·김화·평강)'의 하나인 철원평야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민통선 안에서 수십 년간 초소 만드는 일을 했다는 어르신을 만났다. 초소를 튼튼하게 만들었고 근무자는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열어준다고 하였다. 바로 앞에 보이는 둑길은 탱크 저지선으로 서해안까지 이어져 있다고 하였다. 붉은 표지판은 '비행기 북한 영공 진입방지 경고 표지판’이라고 설명하였다. 북한 땅을 내려다보며 분단의 비극에 가슴 아팠다.
네이버밴드 명산300도전 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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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