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마을 개발로 흩어지는 창작소 작가들
‘고단한 삶 녹아 있는 마을이 예술의 힘’
날개 펼칠 새로운 둥지를 찾아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중계본동 ‘백사마을’이 최고 35층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된다. 1993년부터 재개발을 추진하며 20년을 끌어왔는데, 이제 사업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주거지 보전 계획도 철회하고 총 3110가구를 짓는 정비계획안을 주민공람했다.
1960~1970년대 청계천 등에서 이주한 철거민들이 모여 살던 ‘중계동 산 104번지’가 사라진다. 진작부터 이주가 시작되어 빈집이 대부분이고, 연탄은행도 떠났다. 한쪽 마을입구는 길을 막아놨다.
누구는 그림으로, 누구는 영상으로 ‘104마을의 기억’을 남기는 동안 중계본동 104마을 산등성이에 있던 ‘백사마을 창작소’도 문을 닫았다.
예전 중계마을복지회관 건물을 리모델링한 예술창작소에는 17년부터 1층은 생활문화지원센터로 사용하고, 2층과 3층에는 화가, 서예가 15명이 입주해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해왔다. 비 새는 낡은 건물이지만 자신에게 오로지 할 수 있는 창작의 산실이었다.
운영위원장을 맡아온 지정열 작가는 “104마을은 70년대 삶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겨울에는 마을의 남쪽으로 해가 떨어지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다. 예전에 봐왔던 풍경, 그 정겨운 풍경이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마지막까지 태양이 남아서 그 모습을 기억해주는 듯 더욱 애잔하다. 그 노을을 다시 볼 수 없기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자리를 비우라는 독촉을 받아왔지만 막상 9월 30일로 시한이 닥치니 모두들 진이 빠진 모습이다. 백사마을 개발되기 전에 다른 창작소를 만들겠다는 구청의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민숙 작가는 “창작소는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다.”며 아쉬움을 삭이고 있다. 취미 수준의 창작활동을 전문적으로 몰입하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앞으로 이어가기 위해 집의 거실을 화실로 꾸미기로 했다.
“열심히 좀 하려니까 나가라고 한다.”는 김연재 작가는 “오로지 집중하려고 창작소에 입주했는데, 작가들과 교류를 통해서 배운 점도 많았다. 함께 있으니 힘이 되었다. 이제 나가야 하니 아쉽지만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짐을 쌌다.
백사마을창작소에서 총무 역할을 도맡아 하며,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주은영 작가는 짐도 많다.
“먼지만 가득한 이곳에 정을 붙이고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에서 비구상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하였다. 공간이 있으니 큰 작품도 시도해서 개인전도 10번 이상 했다.”
불암산 백사마을의 계절은 작가들에게 색감을 주어 아카시아 꽃피는 봄밤 옥상파티를 열고, 가을에는 주민초대 전시회도 열었다.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주은영 작가는 상계5동에 화실을 차렸다. “창작 레지던스는 청년에게만 혜택을 주어 신청도 못했다. 경기가 위축되니 빈 상가는 많은데 흥정은 어려웠다. 몇 명이서 같이 구하면 부담도 나눌 수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노원신문 백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