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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우 작가 - 노원을 호로 삼은 역사 인물들

김시습, 이인기, 이항복, 이유, 박세당

기사입력 2026-01-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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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을 호로 삼은 역사 인물들

황천우 작가

()는 본이름과 달리 허물없이 쓰기 위하여 지은 이름으로, 우리 역사 인물들의 경우 상당수의 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추사라는 호로 널리 알려진 김정희는 완당, 예당 등 무려 500여 개의 호를 지니고 있다.

호는 대개 자신이 머물렀던 장소로 짓고는 했는데, 우리 고장 노원에 거주하며 자신의 주거지를 호로 삼았던 인물들을 소개해보자.

먼저 김시습은 근 11년을 노원 벽운계곡에 터를 잡고 살면서 동봉(東峰)이란 호를 취한다. 동봉은 수락산 정상 즉 주봉으로 산봉우리 중 동쪽에 있다 해서 당시에는 그리 칭했었다. 아울러 노원 방향에서 정상처럼 보이는 봉우리는 중봉(中峰)이라 칭했었다.

조선 중기 군기시정(군기시 정3동지중추부사(중추부 소속 종 2) 등의 관직을 역임한 이인기의 호는 송계(松溪), 지금의 월계동에 터 잡았던 데에 따른다. 지금은 지명이 월계로 바뀌었지만 지난 시절 그곳은 소나무가 가득해 지명이 송계였는데, 일제 강점 시절 일본 사람들이 송진 채취를 위해 소나무를 탈취해가면서 송계란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다.

백사라는 호로 널리 알려진 이항복은 현재 중계본동에 터 잡고 살면서 자신의 호를 동강(東岡)으로 삼았다. 동강은 동쪽 언덕이라는 의미로 오래전 하계와 중계를 잇는 언덕에서 동쪽이란 의미를 지닌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 여()의 후손으로 우의정, 좌의정, 그리고 영의정까지 3정승을 역임했던 이유는 호를 녹천(鹿川)으로 삼았는데, 녹천은 송계의 또 다른 지명이었음을 밝힌다.

박세당은 현 의정부 지역에 터를 잡았지만 노원과 밀접한 연고를 지니고 있고 자주 방문하였기에 노원사람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또한 그의 호 서계(西溪)는 수락산 서쪽 시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노원에서 태어나고, 비록 일정 기간 외지에서 생활했지만 주민등록상 단 한번도 노원을 벗어나지 않았던 필자의 경우 호를 노원(盧原)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노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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