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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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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빈민운동의 역사 ‘성공회 노원나눔의집’

박순진 신부 “우리의 미래 불안하지 않다”

기사입력 2026-06-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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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빈민운동의 역사 성공회 노원나눔의집

62640주년 후원의 날, 함께한 이웃들 만남의 광장

박순진 신부 우리의 미래 불안하지 않다

서울에 인접한 근교농업지였던 노원은 1963년 서울에 편입된다. 이때부터 도심부 개발로 밀려난 사람, 농토를 떠나 시골에서 돈 벌러 상경한 사람들이 수락산과 불암산 비탈에 달동네를 이루었고, 중랑천이나 당현천 둑방에 꼬방동네를 형성했다. 허름한 집만큼이나 벌이도 션찮았고, 먹고살기도 만만찮았다. 그런데, 또 도시개발에 내쫓기게 되었다.

김홍일 신부를 비롯한 성공회 청년들이 1986년 상계동 희망촌에서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마을공동체 성격의 빈민선교단체인나눔의집을 열었다. 성공회 나눔의집은 9개까지 늘어나며 빈곤과 차별철폐를 위해 오늘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나눔의집의 활동으로 공부방은 지역아동센터가 되고, 생산자조합 활동은 지역자활센터로 제도화되고,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이끌어내며 이제 4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나눔의집은 40주년을 맞아 626일 도봉산역 인근 그린컨벤션에서 후원의날 행사를 연다. 그동안 함께한 주민, 활동가, 교회 가족들, 후원자, 봉사자 모두 흩어졌던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광장이다. 그 힘들을 모아 가난한 이들과 함께 더 낮은 곳에서 희망을 향해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40주년 행사는 919일 구청 대강당에서 하기로 정해놨다. 10월에는 9개 나눔이집 전체가 모여 앞으로의 방향성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홍일 신부, 오상운 신부에 이어 23년 노원나눔의집 원장을 맡은 박순진 에제키엘 신부는 처음 나눔의집을 시작했을 때 살기 좋은, 행복한 세상을 기대했을 것이다. 생계급여가 지급되면서 이제 절대적 빈곤은 벗어났지만 사회적 빈부격차와 신빈곤, 기후 위기, 전쟁의 불안 등 새로운 문제들이 생겼다. 돈 버는 방법이 노동이 아니라 금융, 인공지능으로 넘어가는 지금 우리 사회는 괜찮을까?”새롭게 고민하고 있다.

박순진 신부는 1996년 성북나눔의집에서 세례를 받고 강제철거 위기에 놓인 세입자들과 아동, 청소년을 만나왔다. 주민자활지원센터와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 활동을 하였고, 2008년부터 춘천 나눔의집에서 활동하다 노원에 오게 되었다. 나눔의집은 현재 자활센터, 돌봄센터, 청년일삶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나우학교, 상상이룸센터. 지역아동센터, 주거복지센터, 장애인주거지원주택 등 위탁사업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었다.

부임 당시 코로나팬데믹으로 모든 활동이 제약받고 있었다. 더구나 상계뉴타운 개발로 이웃들이 떠나고, 교회도 공간활동이 제한적이었다. 각 사업의 플랫폼으로서 나눔의집을 바로 세우기 위해 산 아래 덕릉로 길가로 이전했다.”고 설명했다.

박순진 신부는 1996년에도 성북 나눔의집이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어 헐리는 일을 겪은 바 있다.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마을이 없어졌다. 개발이익을 위해 도시를 운영하다 보니 가난한 사람, 기회가 필요한 사람들이 더 살기 힘들어진다. 사람을 인격적으로 돌볼 수 있는 공동체가 붕괴한 것이다. 중계동 104마을도 재입주에 실패했다. 노원에도 온통 재개발, 재건축 바람이 부는데, 개발 이후의 공동체는 어떻게 형성할지 고민해야 한다. 나눔의집이 지역과 마을공동체의 허브가 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이다.”

박순진 신부는 불안을 부추기고 있지만 우리의 미래를 불안해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은 우리 서로를 돌보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분배하고,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가를 우리 스스로가 정해야 한다. 시대를 각성하고 올바르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노원신문 백광현 기자 100-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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