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록 시니어의 마을일기
전설 따라 백담사(260610/중계4동 주민자치회 워크숍)
억겁을 굽이쳐서 바닥이 드러나고
수천 년 울창하여 생명을 가르친 땅
좁은 길 비켜비켜 굽은 길 꺽고꺽어
가파르게 당도해도 전설처럼 가물가물
궁지에 몰린 이가 궁벽한 이곳에서
인간사 세상만사 앙심(怏心)까지 못 버리고
해와 같이 바람같이 스며드는 한 골짜기
백 번째 번뇌마저 공사 중인 반야심경
이고지고 품어온 것 여기 잠깐 놓았다가
맑은 물 한 모금에 둘러보는 풍경소리
누구들의 염원인가 작은 돌탑 기원하며
나는 또 속세로 돌아가는 소실점
내게는 결합상품처럼 짝을 지어 떠오르는 얘기가 있습니다. 옮겨 짓는 곳마다 불이 났는데 백 번째로 물이 도는 골짜기에 절을 지어 화마를 면했다는 「백담사」의 유래입니다. 다섯 살 아이를 두고 삼촌이 식량을 구하러 내려갔다가 눈에 막혀 며칠 만에 돌아가 보니 조카가 ‘그만’ 부처가 되어 있었다는 「오세암」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나는 또 「적멸보궁」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백담사와 오세암의 중간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탑이나 무덤만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곳들은 우리가 잘 아는 ‘어떤 사건’ 때문에 순례지가 되다시피 했다고도 합니다.
그렇게 들어서만 알던 백담사를 직접 가 본 심경은 마땅하지 않고 간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절도 사람의 것이므로 사람이 아닐 수는 없지만 애석한 전설에 유명세까지 더해져서 백담사는 대단한 관광지가 되어있었습니다.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던 20리 길이 나무를 자르고 바위를 헐어서 셔틀버스는 다닐만한 길을 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계곡은 내려가지 못하게 난간을 쳐서 막아버렸습니다.
마침내 허옇게 드러난 즐비한 돌탑 끝에 한 점 백담사. 그 많은 돌탑은 그 뉘의 것일까요? 순례자나 관광차로 온 사람들의 염원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부터 궁금한 것이 너무 야박한가요? 누구였든지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보는 사람 나름이지!
첫눈에 밟힌 것은 높이 쳐든 포크레인 ‘삽날들’이었습니다. 그 아래에서 인부들이 담배 한 대 참에 커피도 한 잔. 전에는 없었다는 ‘농암장실(聾庵丈室, 百潭茶園)’은 너와지붕입니다. 법당 앞마당까지 다 파헤쳐진 백담사는 공사 중인 게 분명합니다.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맑은 물을 한 모금 하고 문득 풍경소리를 바라봅니다. 때마침 예불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두드리고 두드려도 다다르지 못할 경지처럼 반야심경은 내게 아득합니다.
“야! 너, 그 뒤로 가면 「무문관」이라고 있어. 거기는 문을 잠가버려. 밥만 넣어주는 거지. 거기에서 백장스님의 ‘一日不作 一日不食’을 깨닫는 거야!” “탁발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밥 한 톨 국수 한 가닥도 나가면 안 돼. 그래서 정을 떼게 된다는 ‘발우공양’도 거기서 나온 거야!” 인천에 사는 벗님의 목소리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려면 꼭 ‘무문관’을 통해야 해? 그것을 모르고도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행의 독촉에도 만해의 오도송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금 전 통화한 벗에게 해석을 부탁했습니다. 황벽선사(黃檗禪師)의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靑香)’이 떠오릅니다. 백설에 각혈하는 꽃잎처럼 섬뜩한 卍海를 끌어안고 사진을 박았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또 ‘세속과의 단절만이 수행의 요체인가?’ ‘속세의 삶은 수행이 아닌가?’ 단절은 협소한 것, 옹졸해진다는 것, 완고해진다는 것...! 화엄이 아닌 궁핍한 속박의 화두! 그러므로 아무리 가고가도 반야심경은 멀기만 합니다. 안고 간 짐들은 풀어놓지도 못하고 나왔습니다. 잠시 내려놓은 것들이 따라 나섭니다. “절이 생각보다 작아~아! 그리고 볼 것도 없고...!”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그래도 나를 허락해 주신 인연에 감사합니다. 그 작은 소실점을 돌아서 속세로 돌아가는 일행의 뒤를 따라 나도 물처럼 돌고 돌아 백담의 골짜기를 내려갑니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