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소개합니다-노원중앙도서관 사서 정상훈
[빛과 멜로디] 조해진. 문학동네. 2024
▶호의는 사람을 살리는 빛이다!
12살 권은은 아빠, 엄마가 떠난 빈집에서 승준에게 반자동 필름카메라를 받았다. 카메라는 빛이 되었고, 세상 밖으로 나와 세상을 찍고, 전쟁과 전쟁의 아픔을 찍었다. 그녀는 레스보스 시리아 난민촌 15살 살마를 텐트 밖으로 나오게 했고, 애나와 연결해 주었다. 지유의 아빠, 승준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복판에 있는 임산부 나스차와 인터뷰하다가 알게 된 그녀를 권은(살마)에게 소개해 주었다. 살마는 나스차와 리디아를 영국으로 초대했다.
‘살마는 관공서를 찾아가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신청서를 제출했고 초정장과 신원 보증서를 준비했다.(중략) 여분의 방에는 중고로 구매한 침대를 들였고 시트와 이불, 베개를 준비했으며 커튼도 새로 달았다. 거실에 방수 비닐을 깔아놓고는 페인트를 섞고 있었다.’_194쪽
▶누구도 사람을 죽이고 죽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는 있어도, 승리한 국민은 없다. 승전의 열매는 승전국 지도층이 갖고, 고통은 패전국뿐 아니라, 승전국 국민도 당한다. 콜린은 스무살 기총 사수로 입대하여 두세 시간 교육받고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 드라스덴 군수시설과 주택가에 소이탄을 떨어뜨린 일을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해 괴로웠다.
‘미군의 폭격에 많은 국민을 잃은 이라크는 다른 곳에서는 쿠르드족을 죽였다. (중략)이십 세기 들어 가장 처절한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태인들은 테러리스트를 솎아댄다는 명목을 내세워 그 위로 고압전류가 흐르는 팔미터 높이의 장벽을 세웠고, 가자지구에 주기적으로 폭탄과 미사일, 로켓을 투하해왔다.(중략) 오래전의 영국도 다르지 않았다. 독일의 잔인한 폭격을 더 잔인한 폭격으로 되갚았으니까. 아버지도 희생자야, 라고 말했던 애나의 말을 그(게리)는 이제 이해했다.’ _176~177쪽
▶강대국(특히 미국)은 동맹국(주로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을 방조하고, 적성국의 전쟁 범죄만을 응징한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안의 이름을 높여, 악행을 덮으려 한다.
"사람들이 노먼을 시대의 양심이니 유대인의 마지막 희망이니 하는 수식어로 포장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 그런 거창한 수식어 뒤에 숨어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정의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 뭐랄까, 나(알마)에겐 천진한 기만 같아 보였죠. 알려 했다면 알았을 것들을 모른 척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은 몰랐으니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홀로코스트의 잔인함에 경악하며 자신의 양심을 지켜내려 했던 그 수 많은 비유대인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어요. 화가 나진 않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무기력해졌을 뿐이에요. 무기력한 환멸 같은 거, 그런 거였죠." _126쪽
▶빛과 멜로디! 승준이 권은에게 준 후지사 반자동 필름, 장이 알마에게 준 악보, 게리가 노이만의 죽음을 알린 영상, 구호품을 싣고 이집트에서 가자로 향하던 중 피격되어 죽은 유대계 미국인 의사 노이만, 권은이 만든 게리와 애나의 아버지 콜린의 영상, 난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애나와 살마, 환자를 위해 전쟁터에 남은 나스차의 약사 남편.
빛과 멜로디가 있어 세상이 아직 망하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빛과 멜로디가 된 적 있을까?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작은 촛불이라도 되면 좋겠다.
노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