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6-24 12:36

  • 교육문화 > 인문학

노원포럼 인문학강좌 ‘한글이라는 문화혁명’

하영권 편집장 한자 ‘契’를 통해 ‘환글’정리

기사입력 2024-03-04 10:28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0

노원포럼 인문학강좌 한글이라는 문화혁명

하영권 편집장 한자 를 통해 환글정리

환글에서 한글까지 6천년 글의 역사 조명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으로 우리는 배워 알고 있다. 과연 그전에는 우리말을 표기한 글자는 없었는가? 한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노원포럼(대표 권태한)은 지난 226일 월례 강좌를 열고 한글이라는 문화혁명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하영권 노원뉴스 나우온 편집장이 강사로 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글의 이면에 숨어 있는 다양한 정보와 시각을 제시했다.

하영권 편집장은 한글이 한국 사회의 근대화, 자주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통일 및 세계화의 핵심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한글이 우리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문화혁명이었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그렇게 느끼기는 하지만, 이론적으로 정립한 자료가 드물기에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강의의 배경을 설명했다.

강연에서는 한글 즉 훈민정음에 앞서 사용되었던 우리 글들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다양한 자료들을 언급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자방고전(字倣古篆)’즉 훈민정음은 전자를 본뜬다는 표현에서 나타난 전자(篆字)’가 무엇인지 되묻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 전자가 단군신전이나 가림토문자일 수 있다는 환단고기의 기록은 위서 논쟁에 휘말려 근거자료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명도전(중국 연나라의 화폐가 아니라 고조선의 화폐라 봄)에 기록된 ’ ‘등의 글씨, 최근 발견된 한요부두루마리에 새겨진 한글 비슷한 글자, 김윤경 권재선 등 한글학자의 속용문자론 등을 찾아보면 재검토가 필요한 많은 자료를 발견할 수 있다. 북한 학계에서는 이미 고대에신지글자라는 전자가 있었다고 인정한다.

한자의 수용에 앞서 우리 민족이 사용한 고문자가 없었다고 보면 4천년 글의 역사가 파묻혀 버리고 만다. 고대사 4천년 역사를 회복하기 위해 문자 대신 의 역사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한자 은 계, , , 글로 읽는다. 갑골문의 나라 상()나라의 시조가 설()이다. 그 은나라가 갑골로 점복을 했다. 점복에 사용한 문자가 글()이다. 현재 한자 사전에서는 契丹(거란)처럼 부족 이름에만 로 남아있다. 그러나 은 글() () 즉 글글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글이라 하고, 한글이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종교가 중심이던 환인(무리사회), 환웅(마을사회, 고을사회), 단군(고조선) 시대 사용하던 글자들을 환글(桓契)’로 통칭하고, 그 환글이 한글(훈민정음)의 뿌리였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가설에 따라 6천년 글의 역사를 ‘(환말) > 환글 > 한문(韓文) -> 정음 > 한글로 시대구분하고, 환글의 경우 -씨글--말글-붓글다섯 단계로 내재적 발전을 했다는 새로운 시각을 펼쳤다.

강의 후반부에서 꼴(마을사회)-씨글(고을나라,마을연맹체사회)-(국가사회)로 이어지는 글의 역사를 그 사례와 의미, 논점 등으로 설명이 이어졌다. 6천년 글의 역사를 절반까지 설명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들였다

노원포럼은 오는 325일 월례강좌에서도 나머지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3월 강좌는 노원구민회관 3층 노원교육복지재단 강의실에서 진행한다.

노원신문 백광현 기자
 

 

31 (100-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