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신문 사설
노인에 대한 선입견 또는 편견
‘너흰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언젠가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자연을 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시설을 만들고, 그걸 또 바꾸려고 공사한다. 앞으로 인구가 줄어드는데, 젊은 세대들이 이 시설들을 다 관리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쓸데없는 개발 말고 지금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개발론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어른의 눈으로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 기성세대들이 물러나면 빈자리는 다음 세대가 채우기 마련이다. 기성세대가 축적한 지식뿐만 아니라 부도 고스란히 물려주면 된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이뤄질 일이다.”며 세대론으로 대화가 옮겨갔다.
누구나 점점 노인이 되어간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살아냈다는 것이다. 그건 도서관 하나 이상의 의미이다. 그들이 성장하면서 이뤄놓은 모든 것은 그들의 것이다. 자신들이 이뤄놓은 것을 다 쓰지 못하고 돌아갈 것이다. 후대는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유산을 차지하게 된다.
40대 기수론, 3김 퇴진론 등 세대논쟁은 항상 있어왔다. 어쩜 시대발전을 위한 건전한 대화이다. 점점 힘 빠진 세대가 물러나고, 새로운 세대가 일어선다. 60대에게 20대가 진다면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전 세대가 이뤄놓은 성과와 부를 약탈로 가져올 수는 없다. 전 시대의 역사적 퇴장은 투쟁의 성과가 아니라 시간의 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기성세대와의 싸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노인폄하 발언이 논란거리다. 젊은 사람의 앞날을 결정하는 투표를 미래에는 남아 있지 않을 노인이 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이야기에 노인들이 발끈한 것이다.
쇄신이란 기존의 것을 부정하지 않고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다. 기득권을 인정하고서는 진보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칫 인간의 평등권, 투표권마저 부정하는 듯한 논리 전개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뺨을 때릴 자유는 없다. 분하고 원통해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어른답게 행동했어야 했다. 꼰대가 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권리는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순응하는 것도 지혜이다.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에 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격언은 삶이라는 경륜의 가치를 드러내는 말이다. 노인이 되면 기억력은 떨어지고 남의 이야기보단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까지 등장했다. 그렇다고 인간의 욕망과 감정, 의지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활용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