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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할머니, 류성자 민화명인

2년 그린 백접도, 나비정원에 기증하고파 - 노원문화재단 내년 전시 예정

기사입력 2020-08-3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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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할머니, 류성자 민화명인

“2년 그린 백접도, 나비정원에 기증하고파

노원문화재단 내년 전시 예정

싱싱한 새 잎사귀들이 파란 슬픔처럼 날마다 더 짙어가고 있다. 한꺼번에 쏟아진 내 생애 최고의 기쁨과 슬픔의 계곡 속에서 지금 나는 산짐승처럼 가슴으로 울고 있다.’

-류성자씨의 영나이팅게일상 수상 수기 중(의학신보,1973.6.18)-

건물 앞 화단이 한국적 자연미를 담은 중계본동 원강빌딩(중계로 1653-1)은 원강(元江) 류성자 민화 명(82)이 사는 건물이다. 검정고무신이 놓인 1층은 작업실 겸 전시실이고, 2층은 거주공간 겸 전시실이다. 내부에는 1천여점이 넘는 수석과 200점의 민화작품, 한지공예작품 등이 빽빽하다. 민화 병풍만도 30여점이 넘는다. 26년 공직생활 틈틈이 몰입한 취미생활과 60세 이후 20년간 올인한 인생이모작의 결과물들이다.

건물 앞에는 수석을 쌓은 화단에 포도나무 등 우리 토종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 그 사이에대한민국 전통 민화 명인·명장이라는 제목의 기념비가 서 있다. 경주김씨노원구종친회(회장 김기인)가 지난 3월 세워준 것이다. 명인이 홀로 키운 두 아들이 장성해 손자들을 낳자 족보에 이름을 올려주고 싶어 경주김씨종친회를 찾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

류성자 명인의 삶의 궤적은 미망인, 나이팅게일, 청백리, 독일병정, 갈고리동장 등의 별칭으로도 짐작된다. 부잣집에 태어나 전남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병원 간호사와 여고 보건교사를 지낸 류성자 명인의 역경은 남편의 순직에서부터 출발한다. 남편 고 김동완 소령은 육사 출신으로 197045일 동부전선에서 200명의 중대원들과 비무장지대 시계(視界) 청소를 하러 가던 중, 앞서가던 부대원이 지뢰를 밟자 그 발등을 밟아 발을 떼지 못하게 하고 나머지 부대원들을 대피시킨 후 32세로 산화했다. 동갑인 아내와 4살 아들, 유복자를 남긴 채였다.

주말부부를 그만하려고 학교를 퇴직하고 관사 입주를 기다리며 대방동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밤중에 남편 부관이 찾아와 부음을 전했다. 그길로 구로동 시댁에 가는데 피가 흘러내려 고무신에 흥건했다. 탯줄이 빠져나와 병원에 입원했다가 남편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할 때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다. 5일 후 낳은 둘째 아들이 심장병을 앓아 무척 고생했다. 그때부터 고무신을 좋아했다. 무슨 일이 나면 금방 신고 나갈 수 있어서이다. 동네에선 고무신 할머니라 부른다.”

류성자 명인은 이후 공직에 입문, 1971년 영등포 보건소 간호직으로 출발해 1995년에 4급 서기관으로 퇴임했다. 시립아동병원 간호과장으로 근무하며 장애로 버려진 아기들을 돌본 공로로 청백봉사상도 받았다. 서울시 방문간호체계를 만든 장본인이다. 대통령 표창도 받고독일병정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열심이었다. 이어 간호직으로 처음 동장이 되었다. 쌍문3동 동장으로 있으면서 비가 오면 갈고리를 들고 다니며 하수구 뚜껑을 열어갈고리 동장이 되었다.

무슨 일이든 맡으면 최선을 다했다.”는 류성자 명인은 취미생활도 열심히 했다. 수석인 생활에 이어우리나라 혼의 맛을 보여주는 민화의 매력에 빠져 지금은 작고한 안종현 한국민화작가협회장을 찾아갔다. 이후 20년간을 밤을 새우며 정진, 200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등 40가지가 넘는 상을 휩쓸었고 민화 명장, 명인이 되었다. 민화작품 중 네모난 방으로 꾸민 불밝이창 16폭 병풍은 스케일이 남다르다. 색채 재현도 뛰어나다.

내가 남이 안 하던 것을 해야 괴로움을 넘어서겠다고 생각하면서 했다.”는 류성자 명인은 지금도 아픈 몸으로 아들 모르게 한달에 한번 국립묘지를 찾는다. 백접도는 나비정원에 기증하고 싶다.”며 고단한 세월을 버티며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들을 지금은 어디에 기증할까 고민 중이다. 문양석이 많은 수석도 마찬가지다.

한편, 류성자 명인의 작품들은 내년에 구민들에게 인사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전창현 중계본동 동장의 소개로 원강빌딩을 서너 번 방문한 노원문화재단에서 작품전시회를 열어줄 예정이기 때문이다.

노원신문 김명화 기자

▲ 류성자 민화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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